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 중국의 미래 10년을 읽다 시진핑과 중국의 꿈 (2) : 중화제국의 몰락과 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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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nt
Date
2018-01-0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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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4.04.16 15:38:41

‘몰락(沒落)’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시진핑 주석과 5세대가 주장하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지난 역사 속에서 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중국의 꿈’ 은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후 갑자기 구호처럼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 안에는 중국의 역사가 온전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진시황(秦始皇)이 기원전 221년 전국칠웅(戰國七雄)을 통일하여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룬 이후, 수천 년 동안 정치적으로는 황제 체제와 경제적으로는 농업경제, 그리고 그 사이에 일명 사대부라 고 하는 향신 혹은 지주 계급들이 정부와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의 역할을 하는 국가구조를 가지고 유지 되어 왔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농민의 반란이나 이민족의 침입으로 황제와 지배계급이 바뀌는 경우는 있었으나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는 지속되는 초안정적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배경에는 강력한 통치 이데올로기인 유교(儒敎)와 농업경제, 그리고 한(漢)나라 이후 지속되어온 과거제도 (科擧制度)가 작동하고 있었다.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경제와 문화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찬란하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이나 국가들은 모두 오랑캐라고 간주하였다.

실제로 중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차와 도자기, 비단 등을 유럽에 전파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편, 영국과 유럽의 각국은 근대산업사회에 진입하면서 중국과의 교역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은이 중국으로 유입되었다. 특히, 영국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에서는 이익을 보고 있었으나 유독 중국과의 거래는 적자를 거듭하고 있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아편 무역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아편 무역을 통해 중국에서의 손실을 만회하기 시작하였고, 청나라는 아편의 폐해를 막기 위해 임칙서(林則徐)를 광동지역에 파견하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아편을 몰수하여 불태워버렸다. 이것이 바 로 중국과 세계의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아편전쟁(阿片戰爭 :1840년)의 단초가 되었다. 강력하고 현대화된 군사력을 앞세운 영국의 군대에게 패배한 청나라 정부는 세계의 중심에서 점차 늙고 병든 아시아의 국가로 전락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프랑스, 미국, 독일, 심지어 일본까지도 중국을 침략하 여 강탈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게는 홍콩을 빼앗기고 일본에게는 대만을 빼앗기고, 독일에게는 산동지 역을 강탈당하는 등, 끝없는 수모를 당하기 시작하였다. 청나라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양무운동(洋務運動)’, ‘변법(變法)’ 등 서양을 모방하기도 하고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자구 노력을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결국 당시의 지식인과 손문(孫文) 등의 혁명가 들에 의해 일어나 1911년 10월 신해혁명(辛亥革命)과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원세개(袁世凱)의 배신으로 1912년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溥儀)가 퇴위함으로써 수천 년간 지속되던 황제 체제는 중국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중국은 황제 체제가 사라진 이후에도 강대국의 약탈의 대상이 되었고, 열등한 민족으로 전락하였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던 중국인의 유전자는 극심한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자존심과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오랜 여정을 시작하였다.

그 여정에는 손문, 모택동, 장개석, 주은래,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 등 많은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이들 사이에서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은 각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강한 중화제국으로 발전하여 다시금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와 목표에는 모두 일치하고 있었다. ‘중화제국의 부흥’이라는 역사적 명제는 수차례의 역사적 시행착오를 거쳐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시진핑의 시기에 와서 한발 더 그 명제에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