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94 중국의 후흑학(厚黑學)

Author
ient
Date
2018-01-09 11:03
Views
444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basis63@hotmail.com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3.04.10 14:01:18

중국에서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로 팔리고 관심받고 있는 책중에 ‘후흑학’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 선뜻 다가오지 않는 글자이지만 중국인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처세의 하나가 담겨있는 책이다.

‘후(厚: hou)’는 ‘두껍다’라는 의미이고 ‘흑(黑 : hei)'은 ’검다‘라는 의미이다. 즉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람의 마음자세와 처세가 ‘검은 마음과 두꺼운 얼굴’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색적인 학설이다.

이 책은 1912년에 리종우(李宗吾)란 저자가 쓴 글이니까 이미 100년전에 만들어졌다. 이후 1923년에 베이징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이와 관련한 홈페이지(www. houhei.cn) 까지 갖추고 있다. 저자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전략중에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태도를 역설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저자 리종우는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로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사람의 얼굴 두껍기가 성벽과 같아야 하고, 검기는 석탄과 같아야 한다(厚如城墻, 黑如煤炭)고 주장하고 둘째는 두껍고도 딱딱해야 하며, 검고도 빛나야(厚而硬, 黑而亮)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두껍지만 형태가 없어야 하고, 검지만 색깔이 없어야 한다(厚而無形, 黑而無色)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의 표면적인 이해만으로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후안무치(厚顔無恥)해야 한다고 하는 것 같지 만 그 의미를 잘 살펴보면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후흑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다면 아주 비열한 행위이다. 후흑을 가지고 대중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지고지상한 도덕이다” 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 그의 말을 빌리면,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고 제자백가 사상을 공부하고 입신양명을 추구했지만 실제로 이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 살아가는데 더 필요한 이치가 후흑학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글이 대표적인 예를 들고 있는 인물이 삼국시대의 조조와 유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에는 많은 영웅들이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

조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검은 마음(黑)’으로 등장한다. 삼국지에서 많은 영웅호걸들이 조조의 손에 죽게되고, 심지어는 왕위조차도 찬탈하는 역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조는 “내가 사람들을 배반할지언정, 사람들은 나를 배반할 수 없다(寧我負人, 毋人負我)”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반면 유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꺼운 얼굴(厚)’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조조에게 의지하고 이후에는 여 포, 유표, 손권, 원소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의탁한다. 저자는 유비를 전형적인 후안무치형 인 간이라고 표현하고, 선량함을 가장하여 많은 장군들의 호감을 얻어 살아남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바로 유비의 뻔뻔함과 조조의 검은 마음이 합쳐진 것이 후흑학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유비와 조조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검지만 두껍지 않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검고 (黑) 두꺼움(厚)’을 다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그 목적이 사리사욕을 위한다면 비열한 인물로 전락하고 성공 할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나 맹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아니라 그 상식을 깨뜨리는 중국의 후흑학이 가진 내면의 철학도 결국 모두를 위한 공리주의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