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그림자93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러시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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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nt
Date
2018-01-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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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3.04.03 14:38:51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그해 1949년 12월에 마오쩌둥은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 이제 막 성립된 공산주의 정권은 언제 미국과 국민당의 장제스(將介石)가 연합하여 신중국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냉전이라는 장벽을 세계 곳곳에 심어놓기 시작하였고, 많은 국가들은 스스로 선택하거나 혹은 강요에 의해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은 이당시 2개월 이상을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소련의 스탈린과 협상을 진행하였는데 그 협상과정은 중국에게는 상당히 불쾌하게 받아들여졌다.

소련이 중국에게 상호동맹을 맺는 조건으로 불평등한 조건들을 요구하였다. 소련은 중국에게 3억의 차관을 빌려주는 대신 항공, 조선, 석유, 유색 금속 등에 대해 소련과 협의해서 발전시킬 것을 요구하여 중국의 경제적 주권을 침해하였다.

이제 막 정권이 수립되어 세력이 약했던 중국과 마오쩌둥은 불편한 심기 속에서도 할 수 없이 스탈린의 요구를 따를 수 밖에 없었고, 귀국 이후 중국은 소련에 의존해서 국가의 안전과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이 른바 ‘소련 일변도 정책(蘇聯一邊倒政策)’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의 불편함은 결국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터져나와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심지어는 국경선에서 충돌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후 중국은 미국과 손을 잡고 소련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면서 미국의 힘을 빌려 유엔에서 대만을 대신해서 안전보장이사국이 되었고 국제사회의 주요한 역할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은 수십년 동안 여러 차례의 변화를 겪게 되었고, 중국과 러시아에는 새로운 지도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로 변화되면서 점차 국력이 약화되었고 2차세계대전 이후 지속되던 냉전체제 역시 붕괴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에 성공하여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는 G2 국가로 성장하였다.

올해 3월에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3월 22일 첫 번째 방문국으로 러시 아를 선택했다. 마오쩌둥이 정권을 수립한지 두달만에 소련의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것처럼 시진핑도 첫 번째 방문지로 모스크바를 택한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중러선린우호협력조약(中俄睦隣友好合作條約)’을 비롯하여 정치와 경제무역, 국방, 에너지, 투자, 환경 보호 등 30여개의 협정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시진핑은 방문 첫날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실시하고, 그 다음날에는 러시아의 외교 관 양성학교인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을 찾아 강연을 하였다. 여기서 그는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중에 하나이며, 세계균형의 보장책이라고 강조하였다.

시진핑의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에너지 관련 협력과 군사적 유대관계 강화이다. 에너지와 관련하여 중국의 경제성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석유와 가스 및 광물 자원인데 러시아를 통해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수년동안 합의를 보지 못하던 천연가스의 중국 공급을 합의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은 자원을 러시아는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시진핑의 국방부와 작전통제센터의 방문이다. 외국지도자에게 최초로 공개한 작전통제센터의 의미는 중국과 러시아가 국방과 군사영역에서의 협력강화로 미국에 대항하려는 성격을 짙게 가지고 있다.

이제 시진핑은 마오쩌둥이 당시 소련을 방문했던 것처럼 러시아를 방문하여 미국을 중심으로하는 국제정치질서에 대한 새로운 판을 짜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