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85 류창(劉强)사건’과 한중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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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1-0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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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3.01.23 14:03:52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의 관련 국가들이 영유권 분쟁에 휩싸여 있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독도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중등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명기를 공식발표하였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독도를 방문하는 등 양국이 마찰을 빚고 있다. 또한 러시아와는 쿠릴열도의 북방 4개섬을 둘러싸고 영유권 분쟁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은 조어도(센카구 열도)로 중국과 일본이 일촉즉발의 사태로 치닫고 있는 곳이다. 조어도 문제에 불을 당긴것은 2010년 9월에 일본이 이 섬주변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인 어부를 체포하면서 부터였다.

중국은 일본관광을 금지하고 희토류 수출을 중지하겠다고 일본을 위협하였고, 일본은 도서지역 방어를 명분으로 군비증강과 자위대의 활동을 증강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일본의 관할권을 인정하면서 이 지역의 위기감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일본 자민당은 2013년 국방예산을 1천억엔 증가하고 자위대의 인원증가와 F-15전투기를 구입하기로 하였다. 그 목적을 조어도에 대한 중국의 침범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한중일 3국간에 ‘류창(劉强)’ 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터져나왔다. 일본이 우리에게 인도를 요청한 류창을 일본에 보내지 않고 중국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류창사건은 2011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중국인 류창이 일본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화염병을 던지고 당일 바로 한국으로 입국하였고, 며칠 후 2012년 1월 8일에 서울 중학동의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화염병을 던지다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 사건이다.

2012년 8월 서울 고등법원은 류창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였고, 중국과 일본 정부는 류창을 각기 중국과 일본으로 송환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류창은 재판정에서 “일본 정부가 60년이 지났어도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 사실에 분노했다” 라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류창의 아픔은 한국과 중국이 2차세계대전에 일본에게 당한 고통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제때 그의 외할머니가 일본군에 의해 중국 남부로 끌려가서 위안부 생활을 했고, 외증조부는 항일 운동을 하다가 고문으로 숨졌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일본의 1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할머니의 생일날 화염병을 던졌다는 것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후예들은 류창을 중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중국 정부도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단순한 범인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므로 중국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일본은 일본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류창을 인도하라고 요구하였다. 한국 법원의 최종판결은 류창의 행위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사건임을 명시하고 정치범으로 인정하여 1월 4일에 중국 상하이 푸동으로 출국시켰다.

중국에 돌아간 류창은 어머니와 딸등 가족들과 재회하였다. 이러한 한국 법원의 결정에 대해 일본은 류씨의 석방과 관련하여 1월4일 한국이 ‘한일범죄인 도협정’을 무시하였다고 비난하였다. 반면 중국은 정반대의 환영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한중일 현대사의 고통을 담고 있는 류창 사건은 한중일의 고통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한중일 간의 영토분쟁과 역사문제는 각 정부의 민족주의와 보수적 성향의 대두로 쉽지 않은 길을 가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