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 78 시진핑(習近平)의 신정치관(新政治觀) - 중국식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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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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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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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2.11.14 15:03:24

현재 베이징에는 18차 공산당 대회가 한창이다. 중국 권력의 핵심중의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을 누구로 할 것인가가 앞으로 중국의 10년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에 각 계파간에는 서로의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여념이 없다. 태자당과 상해방,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간에는 자신의 파벌을 하나라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합종연횡중에 있다.

이러한 와중에 이미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는 시안(西安)이 있는 섬서성 출신으로 칭화대학(淸華大學) 화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아버지의 후광으로 국무원 사무실과 중앙군사위원회 비서를 역임하였고 이후 푸젠성(福建省)에서 성장과 서기를 지냈다. 이후 2007년 상하이시 서기(書記)를 지내면서 중앙에 발탁되어 후진타오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서의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15차 당대회에서는 중앙후보위원으로 16차 당대회에서는 중앙위원으로 그리고 17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제 15일이면 끝나는 18차 당대회의 기간중 자신의 정책을 밝히고 있다.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毛澤東)은 죽는 날까지 ‘무산계급의 계속혁명(無産階級不斷鬪爭)’을 주장하면서 미국과 소련과의 전쟁을 준비하였다. 특히 문화대혁명을 발동하여 중국을 투쟁의 도가니를 만들었다.

이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론(中國特色社會主義論)’을 만들어 ‘죽의 장막(bamboo curtain)'에 가려있던 중국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냈다. 덩샤오핑은 ‘개혁과 개방 정책’을 통해 경제발전만이 유일한 발전 방식임을 강조하였고 이 정책의 토대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덩샤오핑 권력 말기에 발생한 ‘천안문사건(天安門事件)’으로 잠시 개혁과 개방이 주춤하였으나 1992년 1월과 2월에 걸친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였다. 이후 권력을 승계한 쟝저민(江澤民)은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을 통해 중국공산당의 구성 영역을 자본가 계급까지도 포함하는 포용적 정책을 실시하여 경제발전의 폭을 확대하였다. 후진타오는 ‘과학과 발전’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보다 합리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노력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빠른 경제성장속에서 중국은 다양한 불안한 요소를 함께 키워갔다. 빈부의 격차,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 동서간의 격차 등으로 끊임없는 소요사태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이러한 위기를 잘 알고 있는 시진핑은 덩샤오핑 이후의 지도자들이 강조했던 경제적 성장의 바탕위에 새로운 시험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바로 ‘신정치관’이다. 중국에서는 지도자의 이론과 주장을 지지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방식중의 하나로 공산당 언론기관을 통해 미리 흘리는 관례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인터넷 매체인 ‘런민왕(人民網)’에서 “당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이에 근거한 새로운 지도이념을 만들어야 당과 국가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평론을 작성하였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시진핑의 새로운 정치관은 중국식 제3의 길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그 내용의 전제는 우선 서구식 정치모델을 배제하고, 마오쩌둥의 혁명론을 탈피하고자 한다.

덩샤오핑과 쟝저민, 후진타오의 경제발전주의를 건드리지 않는 원칙하에 반부패 운동을 필두로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윤리를 새롭게 건설하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공산당 스스로에 대한 자기 개혁을 시도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의 정치개혁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거나 시도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득권층인 중국 공산당의 원로들의 반대에 막혀 무산되어 왔다. 이번에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의 정치개혁의 끝이 어디일지 지금부터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