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 73 여불위(呂不韋)의 권불십년(權不十年)

Author
ient
Date
2018-01-09 10:40
Views
448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basis63@hotmail.com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2.10.11 15:00:19

춘추전국시대 말기 중국에는 전국7웅이라는 7개의 강력한 국가가 존재하였다. 그중에서도 진(秦)의 세력이 가장 강하였다. 당시에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였는데 특히‘여 불위’를 빼 놓을 수 없다.

여불위는 원래 유명한 상인이었으나 후에 진나라의 승상이 되었고 진시황의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물건을 싼값에 구매해서 비싼 가격으로 판매를 해서 당시 최대의 부자로 일컬어졌다. 기원전 267년 소왕(昭王)이 진나라를 통치하고 있었고 그의 후계자인 안국군(安國君)이 태자로 있었다.

안국군은 20여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자신의 후계자는 아직 정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에 안국군은 화양부인(華陽夫人)을 가장 총애하였으나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장사로 큰 돈을 벌어들인 여불위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농사를 지어서 얼마를 벌 수 있습니까? 라고 묻자, “열심히 일하면 10배를 벌 수 있다”라고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다시 아버지에게 묻기를 “그러면 장사를 하면 몇 배를 벌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100배는 족히 벌 수 있다”라고 하자, “그러면 정치를 하면 몇 배를 벌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아버지는 “그 이익은 계산할 수 없다”라고 부자간에 대화를 나누게 된다.

당시 최대의 상인이었던 여불위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바로 자신이 진나라의 왕을 만드는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우선 조나라(趙)에 인질로 가있던 20명의 아들중의 하나인 자초(自楚)를 만나서 “당신은 아무것도 없고 태자의 사랑도 받지 못하지만 내가 당신을 왕으로 만들겠습니다.

대신 이일이 성공하면 진나라를 나와 함께 나누시지요”라고 이야기 하고는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이 투자를 시작하였다. 지금에 견주어 보면 기업인이 정치를 시작한 것이었다.

여불위는 우선 아들이 없는 화양부인에게, 당신에게 아들이 없으니 자초를 아들로 삼아서 후일을 보장받도록 하라고 하면서 많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아들이 없던 화양부인은 이 말을 받아들이고 자초를 후계자로 책봉하였다.

안국군은 왕이 되고 1년도 안되어 사망했고, 여불위가 투자한 자초가 왕이되었으니 바로 진나라의 양왕(襄王)이다. 양왕이 왕이 된 후, 여불위는 승상이 되었고,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至上)의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최대의 사업가에서 최고의 정치권력자로 변신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여불위는 또 다른 욕심을 꿈꾸게 된다. 바로 자신의 혈통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양왕의 부인은 여불위와 계속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는데 그러던 중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 아들이 왕의 자리를 승계하였는데 바로 진시황이다.

양왕은 삼년만에 사망하고 권력을 승계한 진시황은 여불위를 큰 아버지(仲父)라고 부르면서 모든 정책결정을 여불위가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권불십년(權不十年:권세가 10년을 가지 못한다)’이란 말이 있듯이 진시황은 왕이 된지 십년만에 여불위를 몰아내게 된다.

여불위는 이후 자신이 피살될 것을 두려워 독약을 먹고 자살함으로서 성공한 상인에서 성공한 정치가로, 그리고 몰락한 정치인으로 그 파란만장한 인생의 막을 내리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력을 추구하던 많은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소멸해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