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 69 중국 따리엔(大連) - 항공모함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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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nt
Date
2018-01-0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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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2.09.05 14:40:14

따리엔(大連)은 중국 ‘랴오닝 반도(遼寧半島)’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 도시이며, 서북쪽으로는 발해와 동쪽으로는 황해를 마주하고 있다. 따리엔의 중국 국내에서의 경쟁력은 홍콩, 상하이, 베이징, 선쩐(深圳), 타이베이, 광조우, 티엔진(天津) 다음의 순서로 매우 발전된 도시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동북공업지역의 부흥(振興東北老工業基地)’ 프로젝트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랴오닝성, 지린성(吉林), 헤이롱장성(黑龍江)으로 이어지는 동북 3성의 관문으로 물류와 금융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따리엔이 이전부터 이렇게 중심적 도시였던 것은 아니었고, 청나라 말기가 되어서야 정부가 선박을 수리하는 부두로 사용하고 해군기지를 건설하였다. 이러한 과정중에 1894년 청일전쟁이 발생하였고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일본의 따리엔 점령에 대해 러시아와 독일, 그리고 프랑스가 ‘삼국간섭’을 통해 다시 빼앗았고, 이후 러시아가 이 지역을 조차하였다. 과거에는 바닷가의 외로운 도시에 지나지 않았으나 열강의 침략으로 따리엔은 점차 모두의 관심지역이 되었고, 특히 부동항(不凍港: 얼지 않는 항구)에 목말라하던 러시아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도시를 건설하였다. 당시 러시아의 설계사가 프랑스 파리를 모방하여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따리엔에 가면 넓직한 광장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일본은 뤼순(여순: 旅順)지역을 중심으로 일본의 관동군을 파견하였고, 1937년 일본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략하였을 때, 따리엔 항구를 통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22일이 되어서야 일본이 물러났다. 그러나 러시아의 뒤를 이은 소련 역시 이 지역을 노리고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다가, 결국 1955년 5월이 되어서야 다시금 중국 정부의 손에 완전히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의 동북쪽 연해도시중에 유일하게 따리엔에는 한국보다 일본 기업이 더 많이 진출해있다. 또 과거 일본이 점령했던 것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이 따리엔을 방문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간혹 보게 되기도 한다.

따리엔의 한 지역인 뤼순은 안중근 의사와 많은 독립투사가 갇혀있던 ‘뤼순감옥’으로도 유명해서 우리의 많은 관광객들이 한번씩은 들려보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도시에 지금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바로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이 이 지역에서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열 번째 시험 운항을 마친 항공모함은 아직은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채 따리엔 항구에서 정식 취역을 기다리고 있다. 항공모함의 이름을 따리엔이 있는 랴오닝으로 할지 모른다는 여러 가지 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부두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10월에 개최될 18차 중국 공산당 대회나 10월 1일의 국경절에 맞추어 정식 취역을 할것으로 보여진다.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은 따리엔을 포함하고 있는 ‘베이하이 함대(北海艦隊)’에 속할 것으로 보이며 그 사령부는 칭다오(靑島)에 위치하고 있다. 따리엔과 칭다오를 잇는 이 노선은 바로 우리 서해안과 길게 마주하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항공모함이 우리의 앞마당인 서해를 위협적인 태도로 어슬렁거리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날로 강해지는 중국을 어떻게 할 것이며 우리는 어떤 정책을 준비해야 할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