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6) - 장안(長安)의 아랍상인들

Author
ient
Date
2018-03-31 23:38
Views
440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6)
장안(長安)의 아랍상인들

‘장안의 화제’란 말을 언론이나 방송매체에서 종종 접하게 된다. 처음에는 시장을 의미하는 줄 알았으나 한참 후에 이 말이 당나라 시대의 중국의 장안을 가리키는 말이란 걸 알았다. 비록 당나라의 역사가 300년에 불과하지만 그 수도였던 장안, 지금의 서안은 14개 왕조가 수도로 정했던 곳이다. 그래서 3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 역사와 문화의 핵심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장안, 즉 서안에 세계적인 이목과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중국의 야심찬 세계대국을 꿈꾸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단순한 사업이 아닌 향후 2049년까지 계속된다는 기본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시작점이 시안인 이유는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 시기에 로마까지 이어지던 고대의 실크로드(silk road)를 복원하면서 새로운 세계 경제체제를 만들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의 지리적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안에 가보면 첫 번째 눈에 들어오는 것이 도시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고성벽이다. 중국에 남아있는 완벽한 성벽으로 위에 오르면 시안의 시내 전경을 살펴볼 수 있다. 당나라 시기에는 모두 문이 16개가 있었고 이미 인구가 백만명을 돌파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그리고 중국어로 ‘물건을 사다’라는 표현은 ‘買東西(매동서)’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전의 장안에 동쪽과 서쪽에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된 말이다. 그중 동시(東市: 동쪽의 시장)는 주로 중국 국내의 시장이었던 반면 서시(西市: 서쪽의 시장)는 국제적인 무역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서시에서 시작한 무역은 서쪽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로마에까지 이르고 동쪽으로는 한반도까지 연결되는 무역의 중심이었다.
서안에는 여전히 그 당시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데, 당나라시기 중국과 유럽의 중간에 위치하던 아랍상인들의 거리가 지금도 남아있다. 중국에서는 아랍상인의 후예들을 회족(回族)이라고 부르고 그 인구가 천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현재 중국 각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고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은 모스크(淸眞寺: 중국에서는 청진사)에 모여서 종교활동을 한다. 서안의 야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이 회족거리에는 이슬람의 상징들을 걸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으며 이 전통은 천년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이들이 중국에 오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바닷길로 지금의 해상실크로드를 통해서였다. 아랍에서 배를 타고 인도양과 동남아를 거쳐 중국의 광주(廣州), 복건성의 천주(泉州),항주(杭州)등으로 들어왔다. 이후 육로를 따라 서안까지 와서 무역을 하고 또 거주를 하기도 하였다. 또 하나는 육상실크로드 길을 따라 서안에 들어와 무역을 한 경우이다. 특히 13세기에 몽고군이 서쪽으로 확대될 때 이때 더 많은 회족들이 중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들을 일컬어 색목인(色目人)이라고도 불렀다.
중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회족들은 중국의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왕조가 바뀔때마다 이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정책도 변화되었다. 예를 들어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회족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강제적으로 한족과의 동화정책을 실시했다. 점차 실크로드길이 쇠락해가면서 이들은 중국에서 농사와 수공업 그리고 중국내에서의 상업활동으로 그들의 영역이 변화되어갔다.
그러나 실크로드를 누비던 조상의 DNA는 이들을 중국내에서 장사에 대단히 능한 민족으로 자리잡게 했고 곳곳에서 자신들만의 종교를 지키고 생활해왔다. 새롭게 꿈틀거리는 실크로드의 부활은 이들이 다시 동서를 넘나드는 무역상으로 재등장할 기회를 제공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http://ien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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