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5) - 실크로드, 동서문명이 통하는 길

Author
ient
Date
2018-03-31 23:37
Views
175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5)
실크로드, 동서문명이 통하는 길

혜초는 바닷길을 통해 중국을 거쳐 인도로, 그리고 다시 실크로드를 따라 돈황과 서안까지 육로와 해로의 실크로드를 거친 유일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가 걸어갔던 길은 사람과 물건이 왕래했을 뿐만 아니라 동서간의 문명과 문화도 함께 지나가고 어우러졌던 길이다.
중국의 동쪽과 남쪽은 바다가 접해있고 서쪽은 사막과 고산, 그리고 북쪽은 삼림에 둘러져 외부와의 교류가 쉽지 않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 속에서 외부와의 교류에서 중요했던 길이 바로 실크로드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중국의 초기 교류의 대부분은 바로 이 길을 따라서 이루어졌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일직선으로 또는 한 시대만에 존재했던 길은 아니었다. 수많은 국가와 문명, 그리고 사람들이 다니는 살아있는 길이었다. 중국의 장안이나 낙양에서 출발하여 하서주랑(河西走廊)을 지나 천산산맥과 쿤룬 산맥 사이에 있는 타림(塔里木)분지를 지난다. 죽음의 사막을 지나면 이번에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야 한다. 이 고원을 넘으면 드디어 중앙아시아와 이란, 아랍과 지중해를 만나게 된다. 바닷길은 중국의 남쪽으로 파도를 이겨내고 말래카 해협을 지나 인도에 도착하게 되고 다시 뱃길을 서쪽으로 가면 걸프만과 아라비아 반도를 만나게 되고 홍해와 지중해, 그리고 아프리카 북단까지 이어진다.
이 긴 길을 따라 서로간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 길의 중심에는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있었고 이들은 중계무역을 통해 번성할 수 있었다. 정치나 군사적인 이유로 길이 막힐 경우 인류는 또 다른 길을 찾아 그 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바로 육상의 길이 당나라와 티벳의 전쟁으로 막히자 바닷길을 찾았고, 전쟁이 끝나자 닫혔던 길이 새롭게 열려 더욱 번성하였다.
이 길은 단순히 중국의 서쪽만이 아니라 동쪽으로 한반도까지 이어졌고 그 길은 다시 일본까지 이어졌다. 최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일대일로도 사실은 실크로드의 부활이자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택이 새로운 실크로드의 중요한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 당시 실크로드에서 가장 무역을 잘 한 사람들은 ‘소그드인’이다. 서역의 중간에 위치한 사마르칸트 지역에 살고 있던 이들은 자신들만의 무역네트워크와 경영방식을 구축했고 실크로드 무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중국에서는 초원길과 사막길의 중심에 돈황이 있었고 많은 무역과 종교인들이 이곳을 통해 동쪽으로 또는 서쪽으로 길을 재촉했다.
이국(異國)의 종교와 문화들은 이 길을 따라 오면서 점차 변화되고 현지화 되어갔다. 조로아스트교, 경교, 마니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서역의 종교들이 모두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유입되었고 한반도까지 전래되었다. 경교의 경우에는 중국에 천문 등의 과학기술을 유입시켰으며, 이후 양귀비와 관련된 안녹산의 난에 공을 세워 장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된 장안(서안)의 비림(碑林)앞 길거리에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의 탁본을 한국 돈 5천원에 살 수도 있다.
같은 시기에 들어왔던 마니교(摩尼敎)는 불교와 유사한 방식으로 중국에 유입되었으나 현실세계를 부정하였고 하얀 법복을 입었는데, 그 내용으로 인해 당나라의 현종때 금지되었다. 훗날 천산 아래의 작은 왕국의 국교가 되었으나 왕조의 멸망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이 길을 지금 다시 걸어보면 끝없는 모래와 황량한 흔적 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 길은 죽은 것이 아니고 새롭게 부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http://ien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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