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4) - 혜초,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Author
ient
Date
2018-03-31 23:36
Views
156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4)
혜초,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평택호에 가면 혜초기념비가 서쪽 바다를 바라보면서 1400년전의 기억을 품고 서있다. 해가 서쪽으로 지면서 기념비가 붉게 물드는 장면은 우리를 그 시대로 이끌어가고 있는 듯하다. 혜초(慧超), 오랫동안 잊혀진 이름이었다. 그 혜초가 갔던 길이 지금 새롭게 태어나고 있으며 평택도 그 길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혜초는 704년 한국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의 나이로 중국의 광저우(廣州)로 건너갔다. 그가 광저우까지 가기 위해 출발한 곳이 바로 평택 당진항이라고 해서 평택호에 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실제 그에 대한 흔적을 찾아낸 것은 우리가 아니라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펠리오가 돈황의 막고굴 제 17동(藏經洞)에서 우연히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면서 부터이다.
혜초가 쓴 이 여행기는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고 있고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책에서 다룬 내용들이 단순한 불교도의 것이 아니라 세계 문명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서유기로 유명한 삼장법사도 長安(현재의 서안)을 떠나 육상 실크로드를 따라 천축국(天竺國)에 다녀왔을 뿐이다. 그러나 혜초는 한국이라는 동아시아의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광저우로, 그리고 여기서 다시 천축국(인도)을 방문하였다. 그가 다녀온 곳이 크게 보면 5개의 국가를 거쳤기 때문에 책 이름도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이 된 것이다.
그의 저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출판되어 있고, 중국의 인터넷에도 혜초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 승려로 광저우에 왔다가 다시 바다로 인도로 갔으며 여기서 불경을 가지고 서역 지역을 지나 727년에 지금의 신강(新疆)에 도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육상실크로드의 교통의 요지인 돈황을 거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장안으로 돌아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중국에서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당시의 역사, 당나라와 서역관의 관계를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하고 직접 다녀온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육상실크로드와 해상실크로드를 1400년 전에 동시에 거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혜초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중국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전파하는데 힘쓰다가 780년에 오대산 건원보리사에서 입적하였지만 그의 흔적은 오늘에 와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혜초의 부활은 단순히 문화와 역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경제와 미래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그가 한국에서 출발해서 걸어야 했던 그 길은 지금 중국의 시진핑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하는 ‘일대일로’의 핵심 루트이다. 시진핑의 해상실크로드는 복건성 천주에서 출발하지만 북쪽으로 올라오면 평택 당진항에 이르게 되고 남쪽을 내려가면 첫 번째 중계지인 광저우를 만나게 된다. 바로 혜초가 배를 타고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던 길이다. 여기서 그가 다시 인도로 갔던 바닷길이 동남아시아를 지나는 해상실크로의 중심 노선이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올 때 지났던 그 험난한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컫는 파미르 고원이 육상실크로드의 연변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발견된 돈황은 당시 육상 실크로드의 허브(Hub)였다. 지금도 중국의 서안에서 출발하여 유럽까지 가는 육상실크로드에서 반드시 지나가는 길목에 돈황이 있다.
혜초의 비석을 보고 있노라면, 세계 역사상 최초로 해상실크로드와 육상실크로드를 다 거친 세계사적 인물인 혜초가 후손인 우리에게 “여러분들은 어떻게 세계로 나갈 것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 같다.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http://ien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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