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3) - 실크로드(Silk Road), 동서양에 길이 열리다

Author
ient
Date
2018-03-31 23:35
Views
178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3)
실크로드(Silk Road), 동서양에 길이 열리다

‘실크로드(Silk Road)’는 아시아와 유럽간에 중동을 지나면서 길게 연결된 고대 국제무역로를 지칭한다. 최근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부흥을 꿈꾸면서 ‘일대일로’를 제창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65개의 나라들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연변(沿邊)에 놓여있다.
원래 이 이름은 독일의 지리학자인 리히트 호펜이 연구한 ‘중국’이란 책에서 기원전 114년에서 서기 127년간 중국과 중앙아시아, 인도간에 비단 무역을 중심으로 서역으로 가는 길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이 길을 ‘실크로드’라고 불렀고 지금껏 그 명칭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고대 실크로드의 길이는 중국의 장안(지금의 서안)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거쳐 지중해에 도달하게 되고 다시 로마까지 이어지는 약 6440킬로미터에 달했다.
중국 진시황(秦始皇)의 진나라가 멸망한 후 한(漢)나라가 세워졌다.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하던 한족(漢族)의 중국은 북방의 유목민족인 흉노(匈奴)에 의해 빈번히 침략을 받았고 이를 막기 위해 다른 나라와 동맹을 꾀했다. 한나라의 무제(武帝)는 흉노의 서쪽에 있는 대월국(大月國)과 연합하여 흉노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기원전 139년에 장건(張騫)이라는 신하를 파견했다. 장건이 이끄는 사신 일행은 흉노에 붙잡혀 10년의 포로 생활을 하였고 겨우 도망쳐 대월국에 도달했다.
그러나 대월국은 이미 흉노와 전쟁을 포기하고 있어 다시금 중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흉노에게 붙잡혀 1년이상을 체류하고 나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서역을 다녀온 장건은 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중국에 전했다.
한무제는 로마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았으나 결국 실패하고 후에 곽거병이라는 장군이 흉노를 격파한 후 비로서 중국이 서역을 통해 로마로 가는 길을 개통할 수 있었고 체계적인 중국과 로마가 연결되는 무역로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연결되기 시작한 실크로드는 동서로 중국의 장안을 출발하여 신강성(新疆) 위구르(uygur) 자치주를 지나가는 루트와 북쪽의 초원지대를 통과하는 초원길, 그리고 남쪽의 해상을 이용하는 크게 3가지 길이 만들어졌다. 이중 육상실크로드는 신강성을 지나는 일명 오아시스(oasis)길과 초원 길을 의미한다.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은 모두 죽음과 관련된 별명을 가질 정도로 험한 길이다.
이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 길은 단순한 무역만이 아니라 문화, 종교, 사람들이 이어지는 길위의 길이었다. 종교의 경우 불교는 인도의 간다라에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호탄(和田)에서 천산 남로를 통해 중국에 전래될 수 있었다. 서유기의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지나갔던 길이 바로 이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갈래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서는 간다라 양식의 불교 예술이 동양으로 스며들었고 천문, 역법, 수학, 의학 등 인도문화가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중국의 돈황(燉煌)에 가면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고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스님의 여행기가 바로 돈황에서 발견되었다.
기독교 역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유입되었다. 일명 경교라고 불리는 네스토리안이라는 기독교의 일파가 로마에서 이단으로 박해를 받자 당나라때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유입되었다. 지금도 서안의 비림(碑林)에 가면 당시 로마를 대진국(大秦國)이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http://ien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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