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 - 중국 ‘개혁개방’의 길을 열다

Author
ient
Date
2018-03-31 23:34
Views
382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
중국 ‘개혁개방’의 길을 열다

등소평이 설계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는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고, 세계 무대에서 잊혀져 있던 중국을 새롭게 등장시켰다. 모택동 시기의 ‘계획경제’하에서 개인은 거대한 국가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고, 자율성은 상실되었으며 모든 것이 공산당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등소평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책의 ‘빅 브라더(Big Brother)’와 같이 상호감시와 견제의 투쟁과 갈등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계기가 시작된 것이다. 등소평은 소모적인 갈등과 견제를 제거하고 인간성, 쉽게 말해 인간의 본능적 욕심에서 출발하는 유연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인간이 가지는 ‘소유욕’을 배제 할 수 없음을 잘 인식하고 있던 그는 서둘지 않고 조금씩 그 욕망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개혁(改革)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댄 것은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이었다. 모택동 시기에는 농민은 집단농장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 군대식 집체생활을 요구했었고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에 대한 배상은 여기서 배제되었다.
등소평은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농촌개혁’에 우선 착수했다. 그의 방법은 매우 단순했지만 효과는 그 이상이었다. 지금까지의 농지에 대한 사용권을 농민에게 분배하고 계획된 수확량 이상에 대해서는 농민에게 개인의 소득으로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농민의 생산욕구를 자극했고 점차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도시에 대해서도 개인에게 자신들이 직접 경영할 수 있는 허가를 내주었다. 한국과 중국이 국교수립 이후 북경의 왕푸징 거리에 가보면 포장마차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영업허가증을 붙이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개체호(個體戶)’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씌어 있었다. 바로 도시개혁의 출발이었다.
현재의 알리바바를 만든 마윈이나 유명한 기업가들이 등장 할 수 있는 씨앗이 바로 이때부터 뿌려진 것이었다. 만약 개혁정책이 없었다면 마윈이나 알리바바는 없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으며, 지금도 중국에서는 제2, 제3의 천만장자들을 꿈꾸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등소평은 가난했던 중국과 중국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고, 그래서 많은 중국인들이 지금도 그를 높게 평가하고 추앙하고 있다. 모택동이 공산당을 통해 새로운 중국을 건설했다면, 등소평은 개혁개방을 통해 부유한 중국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등소평은 중국이 잘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개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은 ‘자본과 기술’ 어느 하나도 갖추고 있는 것이 없었다.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세계에 대해 문을 열지 않고는 그 목표에 도달 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80년대말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도 등소평은 “문은 닫혀있지만 잠겨져 있지는 않다”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이후 한국과 중국은 1992년에 국교수립을 하였고 지금까지 양국은 경제적인 분야에서 상호 필요한 파트너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은 우리에게 있어 요지부동의 무역 1위 파트너를 지켜오고 있고 평택항의 무역에 있어서도 중국이라는 단어를 빼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발빠르게 성장하고 거대한 세계의 강대국으로 다가온 중국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초강대국 중국과 같이 살아야 할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고민은 우리 세대의 몫이다.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http://ient.or.kr)
basis6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