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 67 한중 수교 20주년의 회고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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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nt
Date
2018-01-0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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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2.08.23 14:38:43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어대(釣魚臺)라고 하는 국가 영빈관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이전에는 경비가 더욱 삼엄하여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내부에 들어가보면 마치 별장과 같은 집들이 독립적으로 세워져 있고 각 건물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다. 지금부터 20년전 양국의 외교부 장관이 양국의 수교협상을 비밀리에 진행했던 곳이 바로 조어대 14호 건물이었다.

당시 국제정세는 미국과 소련의 총체적 대결에서 미국이 승리하였고 사회주의 정권들이 속속 붕괴되고 있었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1978년부터 시작한 개혁과 개방 정책을 가속화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한 내부동력, 즉 자금과 기술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러한 덩샤오핑과 중국 지도자들의 눈에 한국이 들어왔다. 가장 가까운 국가이며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과의 국교정상화가 매우 시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많은 외신기자들과의 회견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질문할 때 마다, 한중관계를 ‘문은 닫혀 있으나 잠겨있지 않다 (關門, 不鎖門)’라고 강조하였다.

한국 역시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과 당시 산업구조의 재편을 위해 중국과의 국교정상화가 필요하였고 이를 위한 회담이 본격화 한 것이다. 결국, 회담에서 한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동의했고,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대전제에 동의함으로서 북한과 대만이라는 수교의 걸림돌을 넘어 1992년 8월 24일 오전 9시에 한국의 외교부 장관과 중국의 외교부 부장이 협정에 서명하였다.

한중수교협정에 서명한 당시의 한국과 중국의 무역액은 64억불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200억불을 넘어서고 있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대상국이고 한국은 중국의 3대 무역 파트너이다. 또한 ‘한류(韓流)’는 드라마, 영화, KPOP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대륙을 강타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국식’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간판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으며 세련됨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에서 발전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많은 장애들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의 일방적인 북한 편들기와 중국의 역사왜곡, 한국과 미국의 세계전략의 한 축으로서 중국과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미국과 중국, 혹은 일본과 중국처럼 갈등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향한 보이지 않는 대립구도가 전개되고 있으며, 일본은 중국에 대한 침략의 역사와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향한 갈등이 현재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과 중국은 이러한 갈등적 구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구조를 더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미중관계나 중일관계와는 다른 시각에서 중국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에 ‘송무백열(松茂栢悅)’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라는 의미이다. 한중관계가 보다 긍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송무백열의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