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65 중국 인물열전 - (6) 조조(曹操): 난세를 평정하다

Author
ient
Date
2018-01-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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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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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6) 조조(曹操): 난세를 평정하다

조조(曹操:155-220년)하면 간신(奸臣), 간웅(奸雄)이란 단어를 연상하기 쉽다. 아마 그 이유는 나관중이란 사람이 쓴 소설 삼국지(三國志)에서 연유할 것이다. 그는 소설에서 유비(劉備)를 인품과 덕을 갖춘 훌륭한 지도자로 묘사한 반면 조조는 난세를 이용해 자신의 사익을 취한 인물로 폄하하고 있다.

그러나 정사(正史)에서는 조조를 능력있는 지도자로 묘사하고 있다. 과연 조조는 어떠한 인물일까? 역사속의 인물은 보는 관점과 시대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조조는 당시 한나라 말기의 어지러운 군벌의 난립을 통일하고 최소한 백성들에게 전란(戰亂)이 없는 평화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조조가 없었다면 천하는 계속 어지러웠을 것이고 백성들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조조는 황산(黃山)이 있는 안휘성 사람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환관 조등(曹騰)의 양자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많은 것을 깨닫는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가서 무술을 연마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 했다. 하루는 밖에서 환관의 자식이라는 욕을 듣고 이후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독서와 병법에만 매달렸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손자병법(孫子兵法), 손빈병법(孫臏兵法) 등 다양한 병법서를 익혔고 훗날에는 자기가 깨우친 병법을 정리하여 병법서요(兵法書要)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조조가 낙양성의 치안을 맡고 있을 때는 한나라 말기로 세상은 혼란에 빠졌고 황건적(黃巾賊)들이 곳곳에서 난을 일으키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각지에서 군사를 일으켰는데 조조도 공을 세워 지금의 제남의 태수가 되었고 황제의 핵심 무장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황제였던 영제(靈帝)가 사망한 후 동탁이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황제를 폐위하고 헌제(獻帝)라는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고 국정을 어지럽혔다. 조조는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도망한 후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여 동탁을 토벌하는 군사를 모았고 당시 산동성에서 횡행하던 황건적 30만명을 물리치고 자신의 세력을 확대했다.

당시 많은 백성들이 계속된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조조는 자신의 지역에서 둔전(屯田)을 실시하고 사회를 안정시켜 나갔다. 동시에 지식인들과 인재들을 등용하여 훌륭한 참모들을 두고 실력을 키워갔다. 특히 헌제가 낙양으로 도주하고 있을 때 헌제를 보호하여 이후에는 ‘황제를 끼고 천하의 제후들을 호령한다(挾天子以令諸侯)’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후 서주(徐州)의 여포를 격파하고 당시 가장 큰 세력이었던 원소(袁紹)를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패배시켜 양자강 이북을 완전히 통일하여 북방의 정치적 안정을 완성했다. 다시 전체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208년에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진격하였으나 형주(荊州)에 와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그 유명한 적벽(赤壁)에서 패함으로서 자신이 살아서는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조조는 30여년을 전쟁터에서 보냈음에도 하루도 책에서 손을 뗀 적이 없을 만큼 독서를 즐기고 또 ‘푸른 바다를 본다(觀滄海)’는 시와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 간신과 영웅에 대한 기준이 다양하게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개인이나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가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었는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