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63 중국 인물열전 - (4) 유방과 항우: 패배에는 그 이유가 있다

Author
ient
Date
2018-01-0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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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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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4) 유방과 항우: 패배에는 그 이유가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제국의 기틀을 만들었으나 난폭하고 잔인한 성격으로 민심을 얻지 못하였다. 천년의 제국을 꿈꾸고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외지에서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이후 법가의 이사(李斯)와 환관이었던 조고(趙高)의 농락으로 태자인 부소(扶蘇)가 제거되고 호해(胡亥)가 황제가 되었으나 진나라는 반란의 물결속에 빠르게 멸망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 혼란기에 등장한 영웅이 있었으니 초나라 귀족 출신인 항우(項羽)와 미천한 집안 출신인 유방(劉邦)이었다. 유방은 서주(徐州)의 패현(沛縣)출신으로 놀기를 좋아하고 부귀영화를 꿈꾸었다. 하루는 진시황을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대장부가 태어나서 무릇 저렇게 되어야 한다(大丈夫生當如此也)” 라고 하면서 감탄하고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반면 항우도 진시황을 본 적이 있는데 “저 자리를 대신해야겠다(彼可取而代之也)” 라고 자신의 이상을 정했다.

유방과 항우는 서로 가정환경이 달랐지만 어릴 때부터 황제가 되려는 공통된 야망을 가지게 된다. 같은 시기에 생존했던 이 두 사람간에는 치열한 경쟁관계가 시작되었다. 중국의 속담에 “하나의 산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지 못한다(一山不容二虎)” 라는 말이 있듯이 결국 더 많은 것을 가진 항우가 유방에게 패배하고 오강(烏江)의 강변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게 된다.

항우를 가리켜 힘이 얼마나 센지 그를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고 하였고 훗날 스스로 초패왕(楚霸王)이라 불렀다. 그런 그가 왜 가난한 출신의 서민에 불과했던 유방에게 패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그의 아버지였던 항연(項燕)이 진시황에게 살해된 이후 삼촌이었던 항량(項梁)을 따랐다. 어릴 때부터 칼쓰기를 좋아했고 학문은 멀리하였다. 자신이 군대를 일으키고 크고 작은 전투를 70여차례를 겪었지만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승리에 대한 자아도취가 항우가 유방에게 패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무력을 통한 승리는 그를 무력을 숭상하게 만들었고 다른 방식에는 관심이 멀어지게 하였다. 동시에 사람을 믿지 않는 성격과 쉽게 믿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줄곧 도피생활을 했기 때문에 남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의 주변에는 모두 자신의 성씨를 가진 친척들만 기용했다. 동시에 자신 앞에서 잘하는 사람들은 가끔 쉽게 믿어버리는 성격이 있어 유방을 죽일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게 되었다. 이러한 성격은 좋은 인재들이 항우를 떠나 유방을 따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항우의 성격이 상당히 포악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기 일쑤였는데 진나라의 20만 군대를 처형했고 진시황의 황궁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렇게 잔인한 성격은 백성들로 하여금 진시황을 연상하게 하여 민심이 점차 유방에게로 옮겨갔다.

항우의 자만심은 허영심으로 변했고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여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도읍을 정함으로서 전략적인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반면 유방은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와도 잘 사귀었고 인재를 등용할 줄 알았다. 동시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억제할 줄 알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서민 출신이었지만 귀족인 항우를 이기고 한(漢)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항우가 유방에게 질 수 없는 전쟁을 지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과정들을 살펴보면 승자와 패자로 나누어지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