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62 중국 인물열전 - (3) 진시황(秦始皇): 천하통일의 영향

Author
ient
Date
2018-01-09 17:49
Views
137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3) 진시황(秦始皇): 천하통일의 영향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로 인재를 아끼고 육성했던 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진나라는 기본적으로 재상과 높은 직책의 책임자들을 오로지 실력에 의해서만 임용했다. 법치를 완벽하게 이루어 냈던 상앙(商鞅)과 이사(李斯)에 이르기까지 모두 왕족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상앙은 진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의 방면에서 전국 칠웅중에서 진나라를 가장 우위에 세워놓았으며, ‘연횡(連橫)전략’으로 유명한 장의(張儀)는 소진(蘇秦)의 ‘합종(合從)전략’을 무력화하고 ‘적을 약하게 하고 진을 강하게 하는(弱敵强秦)’ 정책으로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한편, 기타 국가들은 왕족이나 친족에게 의존하여 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서로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되었고 점차 국가의 국력이 쇠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차이는 점차 커져 진시황이 기원전 230년 한(韓)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조(趙), 위(魏), 초(楚), 연(燕), 제(齊)나라를 멸망시키고 최초로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훗날 이를 “육왕필, 사해일(六王畢 ,四海一)”이라고도 표현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비록 통일의 기간이 짧았지만 지금까지도 중국에 대해 많은 영향을 끼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역사와 시스템을 분석할 때 중국이 유럽과 같이 분열되지 않고 하나의 중앙집권적 시스템으로 수천년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계기를 바로 진나라의 통일에서 찾고 있다.

천하를 통일한 그 해에 많은 신하들은 각 지역에 왕을 봉하자고 하였으나 진시황은 자신을 황제(皇帝)라고 호칭하고 전국을 36개의 군으로 나누어 군수로 두고 직접 통치하였다. 황제가 신하를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는 ‘군현제’가 중국을 지금까지 하나의 중앙정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이었다. 만약 진시황이 이 중앙집권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중국이 유럽과 같이 나누어져 여러 국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중앙집권의 ‘황제시스템’은 중국사회의 다양한 통일을 함께 만들어가게 되었다. 첫째, 진시황은 모든 민간에게 무기 반환령을 내려 수도였던 함양(咸陽)에서 이를 녹여 큰 종과 동으로 만든 사람을 만들어 반란을 방지 하였다. 둘째, 도량형의 표준을 만들고, 화폐를 통일하고, 마차 등의 바퀴 넓이를 통일하였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앙집권의 중국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제도를 통일하였으나 진의 역사는 길게 가지 못했다. 황제가 된 진시황은 독재자의 폐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당시 지식인 계층이었던 유학자들의 비판적인 목소리에 화가 난 진시황은 많은 서적을 불태우고 지식인들을 죽이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켜 민심이 이반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수도였던 함양의 궁전이 비좁다고 생각한 진시황은 아방(阿房)이란 곳에 새롭게 궁전을 짓도록 하였는데 진시황이 죽기전까지 완성이 안되었기 때문에 이를 ‘아방궁(阿房宮)’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북쪽의 유목민족을 막기 위한 만리장성을 축조하기 위해 백성들을 끝없이 동원하면서 백성들의 불만이 팽배해졌고 결국 진시황이 죽자 농민반란으로 진시황의 천하통일은 짧은 수명을 다하게 되었다.

비록 진시황의 천하통일 시간이 짧았지만 중국이 분열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기초를 닦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