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58 비즈니스 삼국지 - (39) 원소(袁紹)의 표리부동(表裏不同)

Author
ient
Date
2018-01-0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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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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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39) 원소(袁紹)의 표리부동(表裏不同)

삼국지 초기에 황제를 억압하고 전횡을 휘두르던 동탁에 분개하여 일어난 제후들의 총사령관으로 원소가 추대를 받았다. 원소는 대대로 명문가의 후손으로 일세를 풍미했으며, 당시 동탁도 그를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동탁이 당시의 황제를 폐하고 새로운 황제를 등극시키려고 하자 원소는 동탁의 면전에서 황제가 된지 얼마 안되고 실정도 없었는데 바꿀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이에 화가 난 동탁이 “천하는 내 손안에 있고 내 검(劍)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겠는가”라고 위협했다. 원소도 굴하지 않고 “당신의 검이 날카롭다면 내 검도 얼마나 날카로운지 봐야겠다”라고 하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훗날 많은 사람들은 원소의 이러한 기개를 높이 평가하고 그를 동탁을 제거하기 위한 연합군의 사령관으로 추대하였고 스스로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황하 이북 지역을 다스리면서 패권을 장악했다. 원소가 초기의 마음을 가지고 계속 했다면 조조에게도 패하지 않았을 것이고 천하를 제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원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자하고 관대해보였지만 그의 속마음은 상대방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당시 유명한 책사였던 곽가(郭嘉)가 원소의 소문을 듣고 그의 문객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원소의 밑에서 수십일을 보낸 곽가는 당시의 사람들과는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주군에 대해 잘 평가해야 한다. 원소는 자신이 패권을 잡고 싶어하지만 사람을 쓸 줄 모르고 우유부단하니 대업을 이루기는 어렵다”라고 그의 곁을 떠났다.

실제로 원소는 동탁을 토벌할 때 손견이 선봉장에 선 적이 있었다. 이때 원술이 고의로 군량을 공급하지 않아 손견을 패배하게 만들었다. 또한 동탁의 대장군이었던 화웅(華雄)과의 전투에서 관우가 싸우러 나가려고 하자 그를 칭찬하기는커녕 먼저 직위를 물었다.

관우가 유비의 활을 들고 있다고 하자 원소는 당장 그를 무시하고 어떻게 상대가 되겠는가하고 비웃었다.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베었을 때도 한마디의 칭찬도 하지 않았다. 원소는 바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중에서 열심히 하는 부하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기본적인 소양을 가지지 못하고 외형과 직위로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자신의 책사였던 전풍(田豊)이 조조가 유비를 공격한다고 허도(許都)를 비웠을 때 반드시 이를 공격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이 아프다는 핑계로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우유부단함을 보였다. 이후 원소가 10만의 병력으로 허도를 공격할 때 전풍이 지금은 공격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이번에는 전풍을 감옥에 하옥시켜버렸다.

결국 원소는 자신의 고집대로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였다가 조조의 군대에게 대패하였고 800명만이 간신히 탈출하였다. 진지로 돌아온 원소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전풍이 자신을 비웃을 것이라고 하면서 전풍을 죽여버렸다.

원소는 인사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아부하거나 친인척만을 중용했고 이들은 원소에게 올바른 직언을 하지 못했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않다가 결국은 조조에게 대패하고 쫒겨나 피를 토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하였다.

원소의 초기의 성공과 훗날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비록 시작은 출중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할 경우 궁극적으로는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