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31 비즈니스 삼국지 - (12) 위연(魏延), 자만이 초래한 비극

Author
ient
Date
2018-01-0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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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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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12) 위연(魏延), 자만이 초래한 비극

사람이 가진 제마다의 성격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 중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대표적인 인물로 위연을 들 수 있다. 위연은 평생동안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무공이 뛰어나 유비에게 크게 중용되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반역자로 처단되고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했으니 비운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연은 원래 유표의 밑에 있다가 후에 창사(長沙)의 한현(韓玄) 밑에 있었으나 크게 중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관우가 창사를 공격하자 황충(黃忠)을 구하고 한현을 죽이고 유비에게 투항하였다. 유비의 수하에 있으면서 수도 없이 많은 공을 세웠다. 장비와 함께 장합을 대패시키고, 조조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하였다.

이후 유비가 촉한의 왕이 된 이후, 수도인 한중(漢中), 지금의 수도방위사령관에 임명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유비가 죽은 후 제갈량은 위연으로 하여금 남만의 맹획(孟獲)을 잡도록 하였고 조자룡과 함께 남쪽 정벌의 선두에 섰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쓰고 6번이나 위나라를 공격했을 때 위연은 진북장군(鎭北將軍)으로 임명되어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수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제갈량이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지 않은 것은 그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매번 북벌을 할 때 마다 그에게 만명의 병사를 주고 측면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위연은 제갈량에게 계책을 올렸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점차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위연은 유표에서, 한현으로 그리고 유비로 자신의 주인을 세 번이나 바꾸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몰라준다고 원망하였는데, 제갈량은 위연을 반역의 기운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쓰기는 하였으나 항상 경계하였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이 세운 공에 도취되어 있었고 자신의 무공을 최고로 생각해서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일단 칼을 빼들 정도였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그를 두려워하여 다들 회피하였다. 심지어는 제갈량의 전략에 대해서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실패하였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제갈량이 병이 깊어져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뒤를 양의(楊儀)에게 맡겼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이후에 어떻게 퇴각할 것인가를 지시하였다. 이때 제갈량은 양의와 강유(姜維)에게 비밀리에 밀명을 주었다. 자신이 위연에게 후군을 맡기는데 만약 말을 듣지 않더라도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제갈량이 죽자 과연 위연은 “승상이 원래 내 계책대로 했으면 일찍이 장안을 점령할 수 있었다”고 비판하였고, 부하들에게 “비록 승상이 죽었지만 내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내가 어떤 사람인데 양의의 명령을 듣는단 말이냐”라고 하면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양의를 막아섰다. 그러자 양의의 부장인 왕평이 위연의 선봉대를 향해 “승상의 시신이 식기도 전에 너희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냐”라고 소리치자 위연의 군대는 위연을 버리고 와해되었고, 결국 자신과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다.

위연의 비극적인 삶은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격적 결함으로 초래되었다. 지나친 자신에 대한 과신과 자만심으로 상사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었고, 또한 부하들도 마음으로 따르지 않았다. 만약 위연이 자신의 능력에 겸손함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 개인의 성공과 실패의 많은 부분은 바로 지도자와 자신의 성격도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