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30 비즈니스 삼국지 - (11) 감녕(甘寧), 대장군이 된 도적

Author
ient
Date
2018-01-09 13:22
Views
196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11) 감녕(甘寧), 대장군이 된 도적

조조의 군대가 오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수십만을 거느리고 장강앞에 진을 쳤다. 이때 손권은 겨우 7만의 병력으로 조조의 군대와 정면대결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감녕에게 기습할 것을 명했다. 감녕은 백명의 정예병을 선발하고 손권이 하사한 술을 부하들에게 마실 것을 권하였으나 감히 마시지 못했다. 이때 감녕은 “나는 한번도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느냐”라고 호통을 치고 조조군을 기습하여 패퇴시켰다.

감녕은 지금의 사천성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패거리를 지어다니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녀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하고 멀리하였다. 20살이 되고 나서 백가사상(百家思想)의 책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더 이상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노략질을 하지 않았다.

이후 형주성의 주인이던 유표(劉表)의 밑에 있었으나 그의 그릇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황조(黃祖)의 밑에 있었다. 황조가 손권의 공격에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구해내었으나 자신을 중용하지 않자 결국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아마 황조는 감녕이 이전에 도적이었다는 이유로 그를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반면 손권은 적벽대전의 주인공이었던 주유(周瑜)와 관우의 목을 벤 여몽(呂蒙)의 추천으로 감녕을 자신의 수하로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은 감녕의 과거 행실과 오나라를 공격했던 것을 이유로 반대하였으나 손권은 과거를 묻지 않고 그를 중용하였다. 손권이 훌륭한 리더였고 한 나라의 군주로서 손색이 없었음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손권은 자신을 공격했던 적(敵)이었고, 또한 출신도 도적임에도 인재를 아끼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감녕은 남들의 비난에도 자신을 알아주고 중임을 맡긴 손권에게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였다. 유비의 대장군인 관우(關羽)조차도 감녕을 겁내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였고, 황조를 대패시켰다. 또한 조조의 군대를 공격하여 이릉(夷陵)을 빼앗았고 수도 없는 공을 세웠다.

손권은 “조조에게 장료(張遼)가 있지만 나에게는 감녕(甘寧)이 있다”라고 할 정도로 그를 믿었으며, 후세의 사람들도 그를 칭송하기를 “감녕이 있어 관우가 감히 강을 건너지 못했고, 조조의 진영은 항상 걱정에 사로잡혔다. 그의 공로는 천년을 간다”라고 하였다.

감녕의 이야기는 리더가 어떻게 인재를 등용해야하는 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손권은 그의 출신성분 보다는 그의 능력과 사람됨을 우선시하여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부하를 둘 수 있었다. 감녕 또한 자신을 포용해준 손권에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최선을 다해 충성하였다. 반면에 유표나 황조의 경우는 능력보다는 다른 것을 중요시하고 인재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인재를 잃었으며 자신들의 미래 역시 밝지 못했다.

지금도 많은 리더들은 인재를 선택할 때, 그의 배경을 먼저 보고 능력을 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말에 “영웅은 각자의 능력이 다른데 출신을 왜 물어보는가”(英雄各有所見, 何必問라出處“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던 한신(韓信), 그리고 떠돌이였던 유방(劉邦), 짚신을 팔던 유비(劉備) 등 중국에는 수없이 많은 출신 성분은 비록 보잘 것 없었으나 후에 큰일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에게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주위에 입지전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곧잘 회자되곤 한다.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그의 능력과 인격이 선택의 우선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것이나 출신, 학력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선택 할 경우 정말 좋은 인재를 놓칠 수 있다. 말은 달리게 해봐야 그 말의 능력을 알 수 있듯이 선입견으로 상대방을 판단해서는 후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