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23 비즈니스 삼국지 - (4) 관우(關羽): 비즈니스 성공의 첫걸음 – 신의(信義)

Author
ient
Date
2018-01-0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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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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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4) 관우(關羽): 비즈니스 성공의 첫걸음 – 신의(信義)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 중에서 지금까지 주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영웅은 조조나 유비, 제갈량이 아닌 관우(關羽)이다.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와 심지어 미국에서조차도 중국인이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를 만나게 된다.

천하를 놓고 싸우던 위(魏), 촉(蜀), 오(吳) 삼국시대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관우는 동쪽 정벌에 나선 조조(曹操)의 군대를 만나 유비, 관우, 장비 세형제가 패배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관우는 토산(土山)이란 곳에서 조조의 군대에 겹겹이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관우의 사람됨을 아끼던 조조는 자신의 부하인 장료(張遼)를 보내 투항을 권고한다.

관우는 조조에게 투항하는 조건으로 세가지를 요구하는데 지금도 이 약속을 ‘토산의 약속(土山約三條)’이라고 한다. 관우는 “첫째, 한나라에 투항하는 것이지 조조에게 투항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유비의 두 부인을 잘 모실 것, 셋째, 만약 유비의 행방을 알게 되면 유비를 찾아갈 것이다.”라는 조건을 걸었고 조조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고 관우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조조는 관우를 자신의 옆에 두기 위해 3일마다 작은 연회를 열고, 5일마다 큰 연회를 열었다. 그리고 미녀와 금은보화를 선물하였으나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관우는 훗날 유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자 조조가 자신에게 하사한 모든 것을 놓아두고 유비의 부인들만 데리고 길을 나선다. 조조의 부하들이 관우를 붙잡아야 한다고 주청을 들이자 조조는 “각자는 자신의 주인이 있는 법이니 쫓지 말아라(彼各爲其主, 勿追他)”라고 하였다.

그러자 조조의 참모였던 정욱(程昱)이 관우가 지금 유비에게 돌아가서 원소(袁紹)의 진영에 가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셈(與虎添翼: 여호첨익)’이라고 하였으나 조조는 “내가 이전에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지키지 않겠는가”라고 하면서 관우를 보내주었다. 삼국지에서 이 장면을 읽으면서 후대의 사람들이 조조를 간웅(奸雄)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그 역시 그 시대의 최고 영웅중의 한 사람임을 충분히 알게 한다.

이후 관우는 220년에 당시 오나라의 장수 여몽(呂蒙)에게 형주(荊州)성을 빼앗기고 전투에서 패해 220년에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관우가 죽고난 후에도 조조는 제후의 예로 관우의 장사를 지내준다.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도원결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비를 찾아간 관우도 그리고 이를 보내준 조조도 모두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관우의 고향은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때 중국 최고의 상방(商幇:상인집단)을 이루었던 ‘진상(晋商: 산서성 상인)’들과 같은 산서성의 운성(雲城) 출신의 사람이다. 산서성 상인들은 척박한 황토고원에서 목숨을 걸고 외지로 나가 중국 최고의 거부들이 되었는데, 이들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관우의 ‘신의(信義)’를 자신의 신조로 삼았다.

이후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집집마다 관우를 ‘비즈니스의 신(財神)’으로 모시고 있으며 그 전통은 지금도 남아있다. 장군이었던 관우가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신으로 모셔지게 되었을까? 비즈니스는 당연히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지만 거기에도 원칙이 있어야 하고 그 원칙의 기본은 바로 ‘신용’이다. ‘신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기업인들의 가장 큰 덕목이다. 지금도 중국에서 성공한 많은 기업가들은 관우의 신의를 자신의 기업경영의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중국의 작은 가전공장으로 시작해서 중국 최고의 가전업체로 성장한 ‘하이얼’은 기업의 핵심 가치를 ‘신의’로 삼고 있으며, 3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 최고의 제약회사인 동인당(同仁堂)도 ‘신용’을 기업의 철칙으로 삼고 있다. 타이완의 최대 갑부였던 왕영경(王永慶)은 자신의 친구가 아들을 데리고 인사를 시키자 선물로 ‘신용’이라는 두 글자를 선물로 주었던 일화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