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15 중국인 이야기 - (28) 동방의 진주, 홍콩 사람들

Author
ient
Date
2018-01-09 13:06
Views
364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basis63@hanmail.net
출처: 평안신문

(28) 동방의 진주, 홍콩 사람들

우리는 홍콩(Hong Kong)이라고 부르지만 중국 사람들은 샹강(香港: 향항)이라고 발음한다. 왜냐하면 넓은 중국 지역에 다양한 방언이 존재하는데 광동성에 속했던 홍콩을 광동어(Cantonese)로 발음하면 홍콩이기 때문이다. 홍콩이라는 이름을 풀어보면 향기가 나는 항구라는 뜻인데, 사실은 옛날에 홍콩에서 멀지않은 동관(東莞:동완)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향나무를 수출하는 항구였기 때문에 ‘향기나는 항구’라는 이름을 얻게되었다.

홍콩은 중국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1840년 중화사상과 세계의 중심으로 자부하던 청나라가 서양의 열강을 대표하는 영국과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열등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태평양과 아시아로 진출하려던 영국은 그 길목에 놓여있는 홍콩을 자신에게 할양하도록 강요하였고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힘없이 홍콩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97년에야 비로서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그 사이 홍콩은 이미 서양의 세례를 받아 정치, 경제 및 문화적으로 서양화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중국으로의 반환은 홍콩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 영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홍콩에게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특별행정구역으로 50년간 자본주의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홍콩은 아시아 태평양과 유럽을 해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상업, 무역, 금융업이 발달하였고 ‘동방의 진주’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동시에 면세지역으로 ‘쇼핑의 천국’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 자유항을 기초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지금 국민소득이 거의 4만불에 도달한다. 홍콩 사람들의 부지런함은 ‘빨리 빨리’를 외치는 우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홍콩에서 절대 ‘만만디’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얼마나 바쁘게 생활하는지 이들에게 길을 물어보려고 다가가면 이미 저만치 멀리 지나가버린다.

홍콩 사람들은 백년 이상을 중앙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생존을 모색해왔다. 그러한 생존의 방식은 이들의 가치관을 배금주의로 변화시켰고, 단체나 국가의 개념보다는 개인이 우선되는 ‘금전지상, 개인제일(金錢至上, 個人第一)’의 가치관이 확립되었다. 홍콩에서는 돈을 벌지 못하면 다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할 정도로 돈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신을 굉장히 믿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불교와 도교가 자신의 수양이 아니라 복을 비는 종교로 변질되어 있고, 또 복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그 무엇도 자신의 종교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명절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많은 절과 사당에는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홍콩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비록 홍콩 사람들이 미신을 믿지만 그 믿는 것 이상으로 자신들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매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힘들게 번 돈을 자신들을 꾸미기 위해 사용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저축보다는 고급화장품이나 명품을 사는데 아낌없이 돈을 투자한다. 아마 그 이유는 오랜 식민지 생활과 중국으로 편입된 이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들에게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탓인 것 같다.

홍콩을 방문하면 꼭 들리게 되는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가 백만불짜리 야경을 감상하면서 그 아래의 복잡한 홍콩 사람들의 삶을 우리의 삶에 대조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