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02 중국인 이야기 - (15) 중국 최고의 부자들 : 산시성(山西省) 사람들

Author
ient
Date
2018-01-09 12:52
Views
132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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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15) 중국 최고의 부자들 : 산시성(山西省) 사람들

산동성 서쪽의 태항산맥을 넘으면 황토고원의 아주 척박한 땅이 나오고 중국 최고 상인들의 전설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산시성이다. 산시성은 중국인들이 말하는 화하문명(華夏文明)이 발원한 지역으로 중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요순(堯舜)과 우(禹)가 도읍을 정해 중원을 다스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황토고원의 산시성 사람들은 척박하고 힘든 땅에서 생존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땅을 개간하고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환경의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산시성 사람들은 명나라와 청나라를 통틀어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인 진상(晋商)이 되어 500년간 중국의 상업을 지배하였다. 그래서 중국의 다른 지역사람들은 산시성 사람들을 일반인들이 넘볼 수 없는 비범한 두뇌를 가지고 있고 셈에 밝고 인색하다해서 99전(九毛九)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산시성 사람들의 성격을 살펴보면 황토고원이라는 지리적 배경뿐만 아니라 중국 내륙에 위치한 이유로 전통적인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당신이 아침의 해를 가졌다면 지는 해도 거절할 수 없다(你擁有了朝陽, 就無法再去拒絶黃昏)”라는 말처럼 중국의 도교와 유교의 특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고원의 척박함처럼 직설적이고 완고한 고집스러움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힘들게 이룬 부를 함부로 낭비하지 않아 인색하다는 평가도 자주 받는다.

산서성에 가보면 알수 있듯이 산이 많고 농지가 적으며 또한 건조한 기후로 인해 생존환경이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이런 환경은 산시사람들에게 근검절약정신을 심었고 또한 어려움을 잘 견딜수 있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만들었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외지로 나가 상업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산시사람들은 고생을 잘 견디는 것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지금도 산시사람들은 외지에 나가 돈을 벌어 식구들을 돌보고 부를 축적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산시사람들은 외모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촌스럽고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평가와 함께 먹는 음식 또한 타지역에 비해 간단하다. 이들이 먹는 음식에서 국수는 빠질 수 없는 메뉴이고 도삭면(刀削麵)이 산시성 특산이다. 비록 산시사람들이 중국인들의 눈에 근검절약의 화신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관혼상제의 경우에는 절대로 금전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들을 사귀는 경우에도 평소의 근검절약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거금을 아낌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산시사람들이 다른 중국인에게 가장 칭송받는 것은 바로 ‘신용(信用)’이다. 이들이 중국 최고의 상인집단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거래에 있어서 신용을 가장 큰 덕목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시사람들도 당연히 이익을 추구하였지만 부정당한 수단이나 눈속임을 사용하지 않고 제품의 품질을 우선으로 거래를 하였기 때문에 많은 중국인들에게 이들의 신용은 처세의 표준이 되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아왔고 심지어 서양과 일본의 침략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변동의 시기마다 많은 변절자들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유독 산서사람들의 수가 현격히 적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손해보더라도 “성실하게 이야기하고 성실히 일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산시사람들과 거래를 하거나 기타 교류가 있을 경우 마음을 놓아도 된다. 이들은 상대방을 속이거나 이익을 위해 의리를 버리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과의 성공적인 거래를 위해서는 스스로 신용과 품질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