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196 중국인 이야기 - (9) 중국의 경기도, 허베이(河北) 사람들

Author
ient
Date
2018-01-0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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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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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京畿道)에 밀집되어 있듯이, 중국의 허베이성(河北省)은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北京)과 4대 직할시의 하나인 텐진(天津)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허베이성을 경기(京畿)지역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경기란 지명은 중국의 당나라(唐)부터 있어왔던 지명이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창안(長安: 현재의 서안)의 옆에 두 개의 현이 있었는데 하나는 경(京)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기(畿)였다. 이 두 개의 현을 합쳐서 경기(京畿)라고 하였고, 이후 경기도라고 하여 관찰사를 파견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은 수도에 인근한 지역을 경기지역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경기도란 명칭도 고려시대에 수도가 개경(지금의 개성)이었기 때문에 주변을 경기(京畿)라고 하였고 지금도 행정지역의 이름을 경기도로 사용하고 있다.

허베이성은 두 개의 대도시를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만리장성이 지나고 있다. 허베이란 이름 역시 황허(黃河)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고 중국 황허문명 발상지중의 한 곳이기도 하다. 허베이성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수도인 스쟈좡(石家庄)이 있지만 우리에게 특별히 알려져 있지 않다. 대신 황제들이 여름의 더위를 피했던 행궁으로 자리잡은 피서산장으로 유명한 청더(承德)가 있고, 또한 진시황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는 진황도(秦皇島)가 있다. 진황도는 진시황이 동쪽으로 순시한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이름이 진황도가 되었고, 여기에 중국 만리장성이 시작점인 산해관(山海關)이 있다. 산해관은 만리장성이 바닷가 끝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고, 가보면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편액을 발견할 수 있다.

허베이성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들을 춘추전국시대의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당시 연나라는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유명한 자객 형가(荊軻)를 보냈고 이로 인해 연나라는 진시황에게 멸망하게 된다. 그 이후 자신의 지역 가운데에 있는 베이징이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수도였기 때문에 항상 수도인 베이징의 움직임에 민감했다. 그래서 성격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달리 특별히 모가 나거나 하지 않고 상당히 조용한 편이다. 다른 중국 사람들은 허베이 사람들을 평가하기를 전통과 예의를 중요시하고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순종적이고 온화해보이지만 북쪽의 유목민족이 중원을 공격할 때 만리장성에 가장 가까웠던 허베이 사람들이 고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반항정신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베이징이나 텐진에 묻혀 있는데, 이들의 성격 역시 ‘스스로 만족함을 알고(知足常樂)’ 조용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대부분이 평원지대였기 때문에 각자의 지역에서 스스로 자력갱생하여 단결심이나 고향에 대한 관념이나 애착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약한 편이다. 이러한 허베이성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사업을 하려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허베이 사람들은 원래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으나 고난도 많았기 때문에 만났을 때 태도가 조금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받기가 쉽다. 이들은 산시(山西) 사람들처럼 계산도 잘하지 못하고 또한 동북 사람들처럼 외향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남방사람들처럼 말솜씨도 뛰어나지 못하다. 대신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성실하고 자신의 자랑을 잘하지 않고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편이다. 그러므로 이들과 교류할 때는 포장하거나 과장된 것보다 제품의 기능이나 실용적인 면을 강조해서 합리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