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중국인의 지혜 120 삼십육계(三十六計) - 混戰計

Author
ient
Date
2018-01-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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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basis63@hotmail.com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3.12.04 16:10:39

제22계: 관문착적(關門捉賊) - 문을 잠그고 도적을 잡는다

원문 : 小敵困之. 剝,不利有 攸往. (소적곤지. 박, 불리유유왕)
번역 : 세력이 약한 상대방은 포위하여 섬멸해야 한다.

이 계책은 원래 민간에서 오랜동안 떠돌던 속어에서 그 출처가 유래되었다. 민간에서는 “문을 닫고 개를 때린 다(關門打狗)”라는 말이 있었다. 이후 이것이 군사적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주로 적을 포위해서 섬멸할 때의 계책으로 발전하였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병법가였던 오자(吳子)는 적을 쫓을때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한 명의 적을 잡기 위해 천 명이 쫓아가도 잡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적이 갑자기 돌아서서 공격을 하여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군이 만약 도망갈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오히려 적군이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한다면 적군을 쉽게 섬멸할 수 있다” 고 지적하였다.

오자의 말과 같이 관문착적 계책은 전국시대의 진(秦)나라와 조(趙)나라가 사투를 벌였던 ‘창핑대전(長平大戰)’을 그 예로 들수 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의 산서(山西)지역의 ‘창핑’이라는 곳에서 더 이상 진공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창핑’에는 당시 조나라의 명장이었던 염파장군이 버티고 있었는데, 염파는 진나라의 병사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는 성밖으로 나오지 않고 성을 굳게 지키는 전략을 시도했다. 수개월 동안이나 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진나라는 이간계(離間計)를 쓰기로 결정하였다. 이간계에 걸린 조나라 왕은 자신의 명장이던 염파장군을 실각시키고 새로운 장수인 조괄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조괄은 전쟁에 문외한이었을 뿐만 아니라 공을 세우기에 급급하였고, 심지어는 염파의 수하들을 모두 제 거하고 자신의 말을 듣는 장수들을 등용하였다. 이로 인해 조나라의 전투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조괄은 진나라와 정면대결을 시도하였고 수차례의 작은 승리를 거두자 기고만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나라의 40만 대군에게 총동원령을 내리고 공격하였고 진나라 군대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조괄이 정신없이 진나라 군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는데 진나라 진영 앞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다.

이때 조나라의 후방이 공격을 받고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후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양식은 끊어졌고, 진나라 군대에 포위 당하고 말았다. 진나라 군대가 겹겹이 조나라 군대를 포위하고 그 시간이 46일 이상 지속되자 조나라 군인들은 양식이 떨어 졌고 심지어는 서로 잡아먹는 일까지 발생했다. 결국 조괄은 마지막으로 결사대를 조직해서 포위망을 뚫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자신도 활을 맞아 사망했다.

남아있던 40만의 조나라 군대도 모두 살해되고 말았으며, 이 전 쟁의 실패는 바로 조나라의 멸망을 초래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신보다 약한 적을 공격할 때는 반드시 사방을 포위하여 탈출구를 완전히 봉쇄해서 적의 의지를 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결사적 저항이나 오히려 상대방의 유인책에 말려 패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포위할 경우 상대방에게 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이를 통해 다시 회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