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96 - 중국 인물열전 (37) 범여(范蠡): 중국 장사의 신(神)

Author
ient
Date
2018-01-0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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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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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37) 범여(范蠡): 중국 장사의 신(神)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번다”라는 속담처럼 중국인들이 유태인만큼 장사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중국에 들어가 볼펜 한 자루씩만 팔아도 큰 돈을 벌 것처럼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만큼 중국인들과 비즈니스가 쉽지 않고 또 비즈니스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유교문화가 비록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이 받아들였으나 그 실천에 있어서 우리가 훨씬 더 경직되어 장사하는 사람들을 천대시하여 상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에서 보면 중국은 상인들에 대해 관용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고, 심지어 여불위(呂不韋)의 경우에는 상인이 재상에까지 올랐다. 장사하는 사람이 재상이 된다는 것은 한국의 역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에서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시는 신(神)으로 관우(關羽)가 유명하지만 이미 춘추전국시기에 ‘장사의 성인(商聖)’으로 범여(笵蠡)라고 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당시 88살이 될 정도로 장수를 하였고 안락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었을까?

범여는 비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배움을 즐겨 천문과 지리, 학문이 뛰어났다. 당시 남쪽 지역의 앙숙이었던 오나라와 월나라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오나라의 왕 합려(闔閭)가 전사하자 아들이었던 부차(夫差)가 힘을 길러 월나라의 구천(句踐)을 대파하였다. 범여는 회계산에 도망간 구천을 설득하여 오나라 왕에게 노비로 살 것을 맹세하고 목숨을 구하도록 지혜를 발휘했다. 3년동안 구천과 함께 오나라에서 노비로 살다가 풀려나 월나라로 돌아온 후 그를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킬 계획을 준비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계책이 ‘미인계(美人計)’였다. 중국의 미인으로 손꼽히는 ‘서시(西施)’를 찾아내어 오나라 왕에게 바쳤다. 미인에 빠진 오나라 왕은 국사를 멀리하고 여색에 빠지면서 점차 국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범여는 월왕 구천과 함께 오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당시의 오나라와 월나라의 관계를 빗대어 ‘오월동주(吳越同舟)’,‘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성어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20년 동안 구천을 도왔던 범여는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자신에게 내려진 상과 벼슬을 버리고 식구들을 데리고 월나라를 떠났다. 범여는 “새가 없으면 활을 감추고,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죽인다(飛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비조진, 양궁장, 교토사, 주구팽)”라는 지혜를 알고 있었다.

이후 생계를 위해 이름을 바꾸고 당시 중국 교통의 요지인 제나라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수년만에 거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번 재산을 계속 이웃과 좋은 일에 사용하였는데 이 또한 소문이 나자 제나라의 왕이 그를 불러 자신의 재상이 되어주기를 청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범여를 가리켜 ‘재물의 신’, ‘장사의 신’으로 불렀고 이후 중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상인으로 추앙받았다.

범여는 제나라 왕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다시 3년간 재상을 지냈다. 3년이 지난 후 그는 “내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재상도 하였고 재물도 많이 모았는데 이것이 지나치면 좋은 징조가 아니다”라고 하고 자신의 관직을 버리고, 재물도 이웃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 나눠준 후 산속으로 들어가 천수를 다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제갈량과 장량에 비교했고, 또한 “국가를 위해 충성을 하였으며, 지혜로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았고, 장사로 거부가 되어 그 이름을 세상에 떨쳤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범여가 훌륭한 정치인이고, 군사전략가이고,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타인을 배려하고, 가장 성공했을 때 자신을 내려놓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