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90 - 중국 인물열전 (31) 시진핑(習近平: 1953 - ): 중국공산당 19차대회

Author
ient
Date
2018-01-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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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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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31) 시진핑(習近平: 1953 - ): 중국공산당 19차대회

2017년 10월 18일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19차대회는 어느 때보다 관심과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이유는 모택동, 등소평 이후 지속되어온 계파간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지고 시진핑 1인체제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원래 집단지도체제는 등소평이 모택동의 1인지배가 초래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중국공산당의 최고 권력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7인에서 9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정책결정을 할 때 비록 최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1표만 행사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하나 1인 지배를 막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격대지정(隔代指定)’이다. 집권 2기에 미리 다음 지도자를 뽑아 권력독주를 막고자 하는 장치인데 이번에 시진핑은 이를 시행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켰다.

시진핑은 원래 시중쉰이라는 중국 원로의 아들로 태자당(太子黨)이다. 그는 문화대혁명때 섬서성으로 하방(下放)되어 고생하면서 자신을 단련시켰고 이후 청화대 화공학과를 졸업했다. 태자당이라는 후광으로 복건성의 하문시 부시장과 복건성 대리 성장, 그리고 절강성 대리 성장을 역임하고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에 진출했다.

2007년에 상하이시 서기를 하고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여 권력의 후계자 자리를 내정받았다. 이때 또 다른 경쟁자였던 보시라이가 등장했다. 보시라이 역시 보이보라는 혁명원로의 아들로 같은 태자당이었다. 당시 보시라이가 훨씬 더 잘나가는 듯 보였고 시진핑의 존재는 그에게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보시라이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시진핑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자신이 권력을 잡은 순간 정적이었던 보시라이와 그를 비호하거나 따르던 세력들을 일시에 쿠데타의 명분과 부패의 올가미로 한 순간에 제거해버렸다.

시진핑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한 후 기존의 파벌이었던 공산주의 청년단, 상하이방, 원로방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19차 전당대회에서 1인지배체제의 서곡을 울렸다. 이제 막 끝난 19차 전당대회는 시진핑의 권력을 확인하는 대회였고, 앞으로 5년간 아니면 그 이후까지도 중국인들은 시진핑의 시대에 살아야 할 것이다.

시진핑은 공산당과 군, 그리고 정부 요직에 자신을 따르던 세력들을 심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진핑의 책사, 호위무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은 당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앙국가안전위원회 등 모두 10개의 직위를 한 몸에 감고 있다. 시진핑의 이러한 1인 지배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

뜻밖에도 많은 중국인들은 그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다. 시진핑은 중국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국민들에게 장밋빛 그림을 쥐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서민적 행보로 기층 민중속에 파고 들어 인기를 얻었다. 둘째는 중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항하거나 심지어 이들을 추월할 수 있다는 꿈을 주었다. 셋째는 지금까지의 중국은 의식주 문제의 해결에 치중했으나 이제는 생활의 질을 높여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시진핑의 시대, 세계와 한국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시진핑은 군사력을 더욱 발전시켜 남중국해와 영토 갈등지역에서 더욱 거센 태도를 보일 것이다. 둘째 국민들에게는 애국주의(愛國主義)의 최면을 걸어 정부의 말을 더욱 잘 듣도록 할 것이다. 셋째, 강한 외교노선을 실시하여 중국의 말을 듣지 않으면 ‘사드(THAAD)사건’과 같은 일들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해질때를 대비해 “외교의 척도는 국익”이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