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84 - 중국 인물열전 (25) 굴원(屈原 BC 340-278)과 단오절(端午節)

Author
ient
Date
2018-01-0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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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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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25) 굴원(屈原 BC 340-278)과 단오절(端午節)

2005년에 한국이 ‘단오절(端午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자 중국의 언론이 시끌벅적했던 적이 있다. 한국이 자신들의 명절을 강탈해갔다는 것이다. 이후 한동안 중국 친구들을 만나면 반농담으로 왜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가느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이에 질세라 다시 2009년에 신청했고 지금은 한국과 중국이 각기 단오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단오절을 4대 명절의 하나로 창포에 멱을 감고 간단한 행사를 하지만 중국은 아예 공휴일로 정해서 하루를 쉬고 있다. 이후 중국 친구들을 만나면 한국 덕분에 공휴일로 만들어졌으니 고마워해야한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한국과 중국간에 한동안 떠들썩했던 단오(端午)는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굴원(屈原)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가 비록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진(秦)나라, 초(楚)나라, 제(齊)나라가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굴원은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의창이란 곳에서 태어났고, 일찍이 실력이 뛰어나 당시 초나라의 왕이었던 회왕(懷王)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항상 왕의 부름을 받아 국사를 논의하고 법률을 개정하여 부국강병의 길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제나라와 연합해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강직한 성격은 주위 사람들의 모함을 받게되었다. 특히 왕의 측근들은 굴원이 못마땅했고 합종연횡(合從連橫)으로 유명한 장의의 뇌물을 받은 자들이 굴원을 모함하여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는 동정호(洞庭湖)와 중국의 각지를 다니면서 자신의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소(離騷)와 어부사(漁父辭)이다. 이소는 그가 처음 유배당했을 때 간신들이 왕의 눈과 귀를 막는 것을 분개하면서 만든 작품으로 중국에서는 이를 그의 대표작으로 보고 있다. 반면 어부는 어떤 도인이 자신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어부에서 나오는 내용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 선택의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그 내용을 잠깐 보면 다음과 같다.

굴원이 쫓겨나 강가를 거닐 때 한 어부를 만났고, 어부는 당신은 초나라의 대부였는데 어떡해 이렇게 행색이 초라합니까라고 물었다.

屈原曰:“擧世皆濁我獨淸,衆人皆醉我獨醒,是以見放 (굴원왈:“거세개탁아독청,중인개취아독성,시이견방) : 굴원이 말하기를 세상이 혼탁하고 나 혼자 깨끗하며, 사람들은 취해있고 나 혼자 깨어있어 쫓겨났소.

漁父 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掘其泥 而揚其波 (어부 왈: 성인불응체어물 이능여세추이 세인개탁 하불굴기니 이양기파) :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에 맞추어 간다. 세상이 탁하면 진흙안에 함께 어울려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되묻고 있다.

굴원은 또 이런 말도 남겼다. “百金買駿馬, 千金買美人, 萬金買高爵, 何處買靑春(백금매준마, 천금매미인, 만금매고작, 하처매청춘) 백냥으로 좋은 말을 살 수 있고 천냥으로 미인을 살 수 있다. 만냥으로 관직을 살수 있지만 어디서 청춘을 살 수 있겠는가?

그는 나라가 망하자 돌을 가슴에 안고 물에 빠져 죽었는데, 동네 주민들이 물고기가 그를 먹지 못하게 하려고 음식을 만들어 던졌고, 그를 구하러 배를 달려 갔다. 중국에서는 이것이 단오의 먹고 즐기는 풍습으로 내려오고 있다. 굴원과 어부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