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29 비즈니스 삼국지 - (10) 조자룡,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리더십

Author
ient
Date
2018-01-0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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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basis63@hanmail.net
출처: 평안신문

(10) 조자룡,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리더십

학창 시절에 밤새워 읽었던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영웅은 관우나 장비가 아니라 조자룡(趙子龍)이었다. 비록 도원결의(桃園結義)의 형제는 아니었지만 유비, 관우, 장비의 세 형제뿐만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장군이었다.

중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진용(金庸)은 조자룡을 무예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지혜도 뛰어났으며 특히 인품이 훌륭했다고 칭찬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무장(武將)이 아니라 명확한 정치적 목표와 사업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맹목적이지 않았다. 당시 그가 병사들을 모아 군대를 조직할 때 원소(袁紹)가 가장 세력이 컸기 때문에 그에게 의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조자룡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조자룡에게 그 이유를 묻자, “천하가 어지러울 때 누가 훌륭한 주군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백성들의 고난을 해결하지 않고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을 모실 수는 없다”라고 명확하게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였다. 당시의 약육강식의 시대 상황에서 자신보다 백성들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훗날 유비를 자신의 주공으로 모신 이후에 평생을 섬겼다. 유비를 따르던 초기에 조조의 공격에 유비가 신야성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퇴각하였으나 백성들을 데리고 갔기 때문에 속도가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조조군의 매서운 공격으로 유비의 아내인 미부인과 감부인 그리고 유비의 아들 아두가 위나라에 생포되었다. 그러자 조자룡이 혼자서 말머리를 돌려 뛰어들어 부인과 유비의 아들인 아두를 구출해냈다. 이때 조조군의 장수 50명의 목을 베어버리고 포위를 뚫었는데 이때부터 ‘장판교의 조자룡’이란 별명이 얻어지게 되었다.

그는 이후 유비를 따라 30여년간 유명한 장판파(長阪坡) 전투를 포함해 수도 없는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호위장군(虎威將軍)으로 불렸고,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에 임명되었다. 조자룡의 인품이 나타나는 대목이 있는데, 유비가 형주를 얻고 삼국정립의 기초가 되는 사천성의 성도(成都)를 점령하였다. 이때 많은 부하들이 전리품을 나눠 주기를 유비에게 간청하였으나 조자룡만이 결사반대를 하였다. 그는 백성들이 금방 전란을 겪어 어려운데 모든 것들은 백성들에게 돌려줘야한다고 주장하여 그의 뜻을 관철시켰다.

사람들이 조자룡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그렇게 뛰어난 장군이었고 무수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절대로 자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신의의 신으로 모시는 관우조차 상대방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조자룡은 자신의 공을 자랑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제갈량도 조자룡을 특히 좋아하고 믿었는데 “내가 계책이 있어도 조자룡이 없으면 안된다(吾定三條計, 非子龍不可行也)”라고 할 정도였다.

오늘날로 보면 기업이나 조직에 있어서 관리자의 위치에 있던 조자룡은 먼저 구성원을 위한 마음을 바탕에 두고 그 위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과 조직의 발전을 생각하는 리더였다. 위에서 지시한 일은 과감하게,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항상 이성적으로 세밀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였으니 누가 그런 사람을 싫어하겠는가?

제갈량이 조자룡을 특히 좋아했던 이유가 바로 아무리 힘든 과업이라도 묵묵히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아주 작은 재주를 가지고도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남을 무시하려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을 낮추고 본분을 지키며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일할 때 진정으로 그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을 조자룡을 통해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