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09 중국인 이야기 - (22) 강남과 강북의 교차지: 장쑤성(江蘇省) 사람들

Author
ient
Date
2018-01-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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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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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22) 강남과 강북의 교차지: 장쑤성(江蘇省) 사람들

중국의 강남과 강북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양쯔강이 지나고 있어 장쑤성 사람들은 중국의 북방과 남방의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사에 나오는 오나라가 위치해있던 지역이기도 하다.

장쑤성의 현재 수도는 난징(南京)으로 중일전쟁 이전에는 난징이 중화민국의 수도였다. 이후 일본이 침략을 하자 수도를 충칭(重慶)으로 옮겼고 일본이 수십만의 난징 사람들을 죽인 ‘난징대학살’의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난징이 일본의 중국 침략의 상징으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중국인들 중에서 난징 사람들이 일본을 가장 싫어한다고 할 수 있다.

난징에서 조금 내려오면 중국 비단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쑤저우(蘇州)를 만날 수 있다. 예부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라는 말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쑤저우에 있는 정원들을 둘러보면 중국 남방의 전통적인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들로 가득찬 정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원들은 양자강을 넘어 북쪽으로 오면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역사와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장쑤성 사람들은 지형이 바다를 끼고 동쪽 해안으로 길게 내려와 있어 쑤저우의 북쪽과 남쪽을 경계로 하여 쑤저우 북쪽 사람과 남쪽 사람으로 구분한다. 쑤저우 북쪽의 사람들은 바로 위가 산동성이라서 산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남쪽은 상하이와 저장성(浙江省)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장쑤성 사람들은 북쪽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에 뛰어났고 관직에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명나라 때는 장원급제한 사람들이 전국에서 20%나 되었고 청나라 때는 40%가 넘었으니 얼마나 수재가 많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내려오는데 중국의 중점 대학으로 꼽히는 ‘211’ 대학 중에서 장쑤성이 1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남쪽 사람들은 저장성과 인접하고 있어 장사에 능했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계산을 잘해서 뛰어난 장사수단을 가지고 있어왔다.

남북을 합한 장쑤성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평가는 중국의 남방과 북방 사람들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매우 현실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북방사람들처럼 강한 성격을 가지지 못해서 남들과 잘 싸우지 못하고 자신을 잘 나타내지도 않는다. 또한 남쪽의 광둥성이나 푸젠성의 바닷가 사람들처럼 모험정신이 강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비교적 온화해보이고 관용이 넘치는 듯 말하거나 행동하기도 한다.

장쑤성 사람들은 성격도 태생적으로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남들보다 항상 반박자씩 늦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장쑤성 사람들과 교류를 하거나 비즈니스를 할 때 우리의 급한 성격으로 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아마 많이 답답함을 느낄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들과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언어의 사용이나 결과에 대한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잘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장쑤성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개인 비즈니스가 발달되어 있다. 이들의 비즈니스 행태는 자신의 자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합작이나 협력 형태의 비즈니스는 쉽지 않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의리나 장기적인 합작 등을 매개로 사업을 협력이 쉽지않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이들은 비즈니스를 할 때 마치 쑤저우의 비단실이 머리카락처럼 가늘지만 이것을 가늘게는 한 개의 가닥으로 64개의 가닥을 만들만큼 아주 정교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