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 58 천안문 사건의 유령

Author
ient
Date
2018-01-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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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email protected]
출처: 평안신문, 승인 2012.06.07 13:37:15

1848년 2월 21일에 오늘날의 공산주의를 창시한 칼 맑스(Karl Marx)가 당시 함께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공산주의자 동맹의 부탁을 받고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을 작성하였다. 그 내용이 비록 선동적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직접적 화법의 강렬함이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며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칼 맑스가 호소하던 공산주의는 구 러시아에서 레닌을 중심으로하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성공하였고 이후 중국에서도 장시간의 혁명을 통해 드디어 중국에도 공산주의 정권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이론이 인간 본성에 대한 회피와 사회구조에 대한 생산관계에만 치중함으로써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1989년의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1년 소련의 해체를 통해 이론 뿐만 아니라 세계정치무대에서도 점차 소멸되어 갔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중국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여기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에 정권을 장악하자 바로 마오쩌둥과 맑스의 공산주의에 새로운 단어를 하나 첨가하였다. 바로 ‘중국 특색’이라고 하는 단어이다. 지금도 중국의 공산당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론이나 정책, 혹은 대답하기 어려운 궁지에 몰릴 때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꺼집어 내는 것이 바로 ‘중국 특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중국 특색의 시장경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명사들 앞에 중국 특색이란 단어가 붙어있다.

덩샤오핑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서 우선 시작한 것은 바로 마오쩌둥과 맑스 사상에 대한 재해석이었고 이를 ‘해방사상(解放思想)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나타난 정책중 하나가 ’선부론(先富論)‘이다. 선부론은 우선 일부분의 지역과 일부분의 사람들이 먼저 부유하게 되면, 그 부유한 지역과 사람들이 기타 지역을 함께 부유하게 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이다.

덩샤오핑의 예측대로 실제로 우선 일부 지역과 일부 사람들이 먼저 잘살기 시작하였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하는 연해지역들은 외국 자본의 진입이 쉬웠기 때문에 내륙의 많은 농민들이 연해도시로 몰려들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또한 일부 사람들도 잘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일부 사람들의 대부분은 중국 공산당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 국한되고 있었다. 즉, 공산당과의 연계가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에 소외되기 시작했고 빈부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날로 확대되었다.

마오쩌둥 시기에는 없던 새로운 사회현상들 즉, 빈부격차의 심화와 사회적 갈등은 세계적인 사회주의의 몰락과 개방의 시기에 지식인들을 고뇌에 빠지게 하였다. 그 고민의 해결책은 바로 경제의 개혁과 개방만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정치체제의 개혁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권력집중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고 이에 중국의 지식층과 학생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6.4 천안문 사건’의 시작이었다.

많은 지식인과 학생, 그리고 청년들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천안문 광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주의를 원하는 학생들의 희망과 기대는 6월 4일 새벽, 굉음을 내고 달려오는 인민해방군의 탱크와 기관총에 절규로 바뀌었다.

해마다 6월 4일이 되면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전국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천안문의 유령이 올해도 어김없이 중국 공산당 수뇌부들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