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 46 시진핑 - 태자당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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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nt
Date
2018-01-0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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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베이징에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 11기 5차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 대회는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제 4세대가 주관하는 마지막 전인대(全人大)가 될 것이며, 올 한해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의 현안을 논의하고, 중국 경제의 안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번 회의를 끝으로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하는 지도자들은 올해 10월에 예정된 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과 제 5세대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이양할 예정이다.

시진핑은 1953년 6월 베이징과 가까운 산시성(陝西省) 푸핑(富平)에서 출생했다. 이전의 베이징을 베이핑(北平)이라 불렀는데 그 이름을 북경과 가깝다는 뜻으로 진평(近平)으로 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習中勳)으로 한국 전쟁때 중국인민군의 총참모장이었던 펑더화이(彭德懷)의 최측근이었다. 그러나 펑더화이가 마오쩌둥을 비판하고 실각하자 시중쉰도 숙청당하게 되었고 문화대혁명 기간동안 농촌에서 고된 생활을 보내게 된다. 수차례 공산당 입당에 실패한 시진핑은 결국 1974년 1월에 중국공산당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고 이듬해인 1975년에 칭화대학(淸華大學)에 입학하였고, 졸업후 아버지의 후광으로 국무원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덩샤오핑의 혁명원로에 대한 우대로 샤먼(廈門)의 부시장을 시작으로 상하이시 서기까지 올랐다.

2007년에는 17차 당대회에서 현재 후진타오 주석의 지지를 받던 리커창을 물리치고, 서열 6위 자리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어서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이 되었고, 2010년 10월의 17기 5중 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어 올해 10월 제 5세대 지도자로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시진핑이 이렇게 빠르게 권력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중국 정치권력의 보이지 않는 합종연횡이 숨어있다.
시진핑은 전형적인 태자당의 일원이다. 태자당은 중국 혁명의 원로들을 아버지로 둔 2세들을 의미하며 그 대표적인 인물들로 덩샤오핑의 정적이었던 천윈(陳雲)의 아들, 국가부주석이었던 왕쩐(王震)의 아들 왕쥔(王軍) 등이 있으며 최근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보시라이(薄熙來)는 보이보(薄一波)의 아들로 역시 태자당의 일원이다.

태자당은 중국의 권력을 구성하는 세 개의 파벌중에 하나이다. 중국의 권력 파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쟝저민이 심어둔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방(上海幇)’이고, 또 하나는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청년단’ 그리고 바로 혁명원로의 2세로 구성된 ‘태자당’이다.

지금 이 세 파벌사이에는 중국의 권력을 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시진핑은 태자당의 1인자로 장쩌민의 상하이방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후진타오와도 괜찮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제 5세대의 지도자로 선출되는 것이 가능했다. 즉, 중국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한 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세력간의 합종연횡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권력 승계를 앞두고 태자당과 공산주의 청년단간의 권력투쟁이 심화되고 있다. 만약 올해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더라도 후진타오가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넘기지 않을 경우 총서기와 군사위 주석직이 분리될 가능성이 있다. 2012년 중국의 권력 판도는 물밑에서 또 다른 합종연횡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