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6) - 호찌민(호지명)-베트남의 독립

작성자
ient
작성일
2018-08-29 23:47
조회
50
호찌민(호지명)-베트남의 독립

신중국을 건국한 인물이 모택동이라면, 베트남에도 독립과 통일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 있으니 바로 호치민이다. 1975년 이전 사이공으로 불렸던 남베트남의 수도도 남북베트남이 통일된 이후 호치민시로 그의 이름을 빌려서 지었다. 지금 호치민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관광과 사업을 위해 모여들고 있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 가면 시내에 바딘광장이 있고 거기에 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많은 관광객들과 추모객들이 줄을 서서 반듯한 자세로 누워있는 그를 볼 수 있다. 아주 작은 키와 왜소한 몸과는 달리 강인한 정신력으로 프랑스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고 베트남 사람들의 숙원이던 독립과 통일을 가져온 베트남의 정신적인 지주로 지금껏 베트남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있다.
그는 당시 가난한 농민의 집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의 가난은 그의 정신세계를 일찍 성숙시켰다. 1890년 한창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태어난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식당에서 일하면서 유럽의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였다. 이후 1914년에서 19년까지 영국의 런던과 미국의 뉴욕에서 하인, 실습생 등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면서 조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키워갔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베트남의 독립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들고 연합국 지도자들을 찾아가기도 했고 당시 미국의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호찌민의 외국 생활은 그를 더욱 강하고 추진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 주었다. 이후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공산주의자로 성장한 그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공산주의자 연맹대회에도 참석하였고 강한 어조로 연설도 하였다.
그는 아시아인으로서 식민지 문제와 농민의 역할에 대해 주장하였다. 농민에 대한 중시는 정통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조금 이단으로 보였지만 베트남 인구의 대부분이 농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다음해에 호찌민은 1925년 베트남에서 가까운 중국의 광동지역에서 ‘베트남 혁명청년 동맹’을 결성하고 1930년 2월 홍콩에서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혁명 활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1941년 프랑스에 대항하는 세력들을 결집하여 ‘베트민’을 만들었다.
호찌민의 프랑스에 대항하는 전략과 전술들을 살펴보면 오랫동안의 외적을 물리친 베트남의 전통적인 투쟁 방식을 응용하였다. 베트남의 험악한 자연환경과 거친 풍토를 이용하여 적들을 지치게 하고 동시에 유격전을 펼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마치 천년전 중국의 공격을 막아냈던 베트남의 선조들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중국의 모택동은 중국인들을 계급에 따라 적과 동지로 구분하여 혁명을 하였다. 반면 호찌민은 프랑스 제국주의를 몰아낸다는 목표에 동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계급적 구분을 하지 않고 다 자신의 편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호찌민의 이러한 성향은 비록 혁명의 수단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의 뿌리 깊은 곳에는 강한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1945년 9월 2일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는 하노이를 점령하고 바딘 광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토록 독립을 갈망했던 호찌민은 냉혹한 국제정치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1954년 제네바 협정에 의해 17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마치 우리 한반도가 반으로 나뉘었던 베트남도 남북으로 강제로 분할되었다.
이후 호찌민은 독립에서 통일을 목표로 삼고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1964년 유명한 ‘통킹만 사건’으로 본격화된 베트남 전쟁은 1975년 베트남이 통일 될 때 까지 지속되었다.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자였던 호찌민은 결국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에 사망하게 된다.
지금도 베트남의 곳곳에는 호찌민 주석을 기리는 구호와 문장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비록 개방과 개혁으로 베트남에 한국과 많은 외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는 여전히 호찌민이 만든 공산당이 베트남을 움직이고 있고 외부로부터 온 이방인들을 말없이 살펴보고 있다.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basis63@hanmail.net / 010-7149-8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