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5) - 베트남-강인한 생명력

작성자
ient
작성일
2018-08-05 20:04
조회
56
베트남, 강인한 생명력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베트남은 생존하기 위해 수천년간 중국의 침략을 견디고 독립을 유지해왔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프랑스의 식민지를 겪었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베트남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1975년 남북 베트남을 통일한 이후 캄보디아의 크메르 정부를 몰아내고 그 이유로 중국과 수년간에 걸친 전쟁을 수행했다.
수천년간 전쟁을 겪으면서도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인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이들이 어떻게 살아 남았는가는 앞으로 베트남과의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중국은 베트남을 역사적으로 대등한 국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천년 이상을 중국이 정치적으로 지배하면서 자신의 속국으로 간주해왔다. 심지어 당나라 시기 베트남 지역에 안남도호부를 떠올리면서 베트남을 안남(安南)으로 불렀다. 우리가 이전에 베트남 쌀을 알랑미라고 불렀던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베트남의 시작은 기원전 7세기에 동썬(Dong Son)이란 지방에서 청동기 문화가 꽃을 피우면서이다. 이후 기원전 3세기에 남월이란 국가가 등장한다. 중국과의 실질적인 관계는 남월의 건국에서 부터이다. 진나라에 의해 광동지역의 관리로 보내졌던 찌어우(趙佗)는 진나라가 멸망하자 자신을 왕으로 칭했다. 이후 한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요구했고 이에 응했지만 금방 자신도 황제라고 칭하고 한나라와의 관계를 끊었다. 이후 국력이 강해진 한나라는 한무제때 베트남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베트남에 9개의 군을 설치하였다.
이때부터 베트남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약 천년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중국의 중원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베트남의 독립전쟁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처음에는 오나라, 나중에는 진(晋)나라, 그리고 수나라, 당나라까지 지배와 독립이 반복되었다.
당나라시기에는 아예 베트남 지역에 안남 도호부를 설치하고 직접적인 통치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당나라 멸망 이후 베트남은 939년 드디어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국을 되찾게 되었다. 이후 베트남은 수차례에 걸친 중국의 침입에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베트남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적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협력하기도 하고 조공도 하면서 독립을 유지하는 실용주의적인 외교정책을 펼칠 줄 알았다. 이후 송나라에서 베트남을 다시 공격하였으나 대패하였고 오히려 남송때에는 이씨 왕조를 안남국왕으로 인정하였다.
이후 몽골의 원나라가 세 차례에 걸쳐 베트남을 공격하였으나 직접적인 전쟁과 외교를 통해 독립을 지킬 수가 있었다. 이후 명나라 때 잠깐 직접적인 통치를 한 적이 있으나 금방 베트남의 저항으로 독립적 국가로 인정해주었다. 청나라 시기에도 기본적으로 조공관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커다란 충돌없이 지낼 수 있었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조선의 종주권을 놓고 청일 전쟁이 발생했던 것과 같이 베트남의 종주권을 두고 1880년에 청나라와 프랑스가 전쟁을 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더 이상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공격한 이후 베트남은 또 지루한 독립전쟁의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그 전쟁의 끝은 1975년까지 이어져온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에서 베트남은 절대 중국을 자신의 위에 놓지 않았다. 자신들을 남쪽, 중국을 북쪽으로 부르거나 당나라 사람, 청나라 사람 이런 식으로 불렀다. 비록 실질적인 힘의 차이로 어쩔 수 없이 겉으로는 고개를 숙였지만 이들의 마음속에 중국인을 자신들의 위에 놓은 적이 없다.
이 강한 민족성이 베트남을 그 어떤 민족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을 겁먹지 않는 국가로 만들어 주었다. 현재의 베트남은 경제적인 성장과 함께 아시아의 미래의 새로운 파워로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박기철(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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