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46 비즈니스 삼국지 - (27) 여몽(呂蒙)이 관우(關羽)를 잡다

Author
ient
Date
2018-01-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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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basis63@hanmail.net
출처: 평안신문

(27) 여몽(呂蒙)이 관우(關羽)를 잡다

우리가 자주 쓰는 고사성어중에 ‘괄목상대(刮目相對)’란 말이 있다. 중국에서는 ‘괄목상간(刮目相看)’이라고 하는데,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발전했을 때 칭찬하는 말이다. 그 고사성어의 주인공이 바로 오나라의 장군이었던 여몽(呂蒙)이다. 그는 사병에서 출발하여 열심히 노력해서 훗날 오나라의 장군이 되었고, 관우(關羽)를 물리치고 당시 삼국간에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던 형주(荊州)를 점령했다.

사실 당시에 지명도나 실력으로 보면 여몽은 관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낮추고 상대의 마음을 읽어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관우가 번성(樊城)이라는 곳을 공격하여 조조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몽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손권에게 관우가 없는 틈을 타서 형주를 점령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형주에 촉나라의 정예군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강을 따라 곳곳에 봉화대가 있어 공격이 쉽지 않았다. 여몽은 갑자기 병을 핑계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때 육손(陸遜)이 여몽을 만나 관우는 영웅으로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고 교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건의했다. 그리고 만약 여몽이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으면 관우는 더욱 교만해져 형주의 정예군들을 모두 번성을 공격하는데 사용할 것이며 이때 형주를 차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관우는 여몽이 병에 걸려 육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소리를 듣자 육손은 일개 서생에 불과하니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형주의 대부분의 병력을 번성을 공격하는데 동원하였다. 여몽은 정예 병사들을 장사치로 변장시켜 상선(商船) 태워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형주를 점령했다.

형주를 점령한 후 여몽은 병사들에게 형주성의 사람들과 이들의 재산을 손대지 못하게 했고 선행을 베풀었다. 자신의 친척이 형주성 사람들의 재산에 손실을 입히자 울면서 참수를 했고 또 관우의 식솔들도 특별히 보살펴 주었다.

그러나 교만한 성격의 관우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대군을 이끌고 형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행군을 시작했다. 이때 산위에서 ‘형주 사람들(荊州土人)’이란 깃발을 든 사람들이 관우 수하의 형주 출신 병사들에게 투항을 권고했다. 관우가 분노하면 할수록 병사들이 줄기 시작했다. 관우가 산으로 진격하는 동안 오히려 자신은 오나라의 군대에 포위되었고 ‘형주 사람들’은 자식과 형제, 남편에게 투항하고 돌아오라고 쉬지 않고 불렀다. 관우가 돌아보니 자신을 따르는 사병은 300명 밖에 남지 않았다. 천하무적의 명장이었던 관우의 최후는 이렇게 끝이 났다.

여몽이 형주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관우와의 전투에 이용한 것은 마치 한신이 초패왕 항우(項羽) 와의 전투에서 초나라의 노래를 불렀던 ‘사면초가(四面楚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여몽의 이러한 전략과 전술은 첫째 자신을 감추고 상대방을 안심하게 한 이후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둘째는 적의 가솔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인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한 후 공격을 할 경우 승리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병법에 ‘공성위하, 공심위상(攻城爲下, 攻心爲上)’이라는 말이 있다. 직접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요, 사람의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다. 여몽이 백성들의 마음과 병사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에 천하 제일의 명장이라고 하는 관우를 이길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