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72 - 중국 인물열전 (13) 한신(韓信): 비극적 영웅

Author
ient
Date
2018-01-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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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basis63@hanmail.net
출처: 평안신문

(13) 한신(韓信): 비극적 영웅

중국의 고사성어 중에 토사구팽(兎死狗烹)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화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한신(韓信)을 빼놓을 수 없다. 장량(張良)과 함께 유방(劉邦)을 도와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웠지만 결국 유방의 손에 죽게 된 비극적 영웅이기도 하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생활을 겪었다. 그러나 스스로 무예를 연마하였고 비록 남루한 옷을 입었지만 항상 검을 차고 다녔다. 그는 언젠가는 자신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자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겼다.

하루는 동네 불한당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그 중 한명이 한신에게 네가 칼을 차고 있는데 나를 찌르지 못하면 내 가랑이 밑을 지나가라고 놀렸다. 한신이 가랑이 밑을 지나가자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겁쟁이라고 놀렸다. 사실 한신은 이들이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아준 것 뿐이었다.

어렸을 때의 곤궁함은 한신에게 참는 법과 또 자신이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한신은 칼을 차고 항량(項梁)이란 장군 밑에 있었는데, 그가 전사하자 다시 항우(項羽)의 군대에 들어갔다. 항우가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자 그는 초나라를 떠나 유방(劉邦)의 군대로 넘어왔다.

당시에는 인재들이 자신들을 알아주는 주군을 스스로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한신 역시 그 중의 한명이었다. 유방도 처음에는 한신의 능력을 몰라주었다. 이에 한신이 다시금 유방의 군대를 떠나려고 할 때 그의 능력을 알아본 당시의 승상이던 소하(蕭何)가 만류하였다. 유방이 소하의 건의로 한신을 만나 국사를 논의하면서 그의 능력을 발견하고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한신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준 유방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항우가 유방을 한중(漢中)으로 보내자 한중으로 가는 길을 회복했다. 또한 관중(關中)지역을 점령하여 유방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선봉에 섰다. 또한 당시의 세력이 강했던 조나라의 20만 대군을 기병으로 기습 공격을 시도하여 격파하였다.

기원전 203년 초나라와 천하를 쟁패하기 위한 전쟁이 점차 가열화되고 있었다. 이때 초나라의 장군 용차(龍且)가 20만명을 이끌고 유방을 공격하였고,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회수(淮水)라고 하는 지역에서 대치하였다. 한신은 저녁에 1만의 병사들로 하여금 강을 막도록 하였고 전투가 시작되자 지는 척하고 적을 유인하여 항우의 20만 대군을 전멸시켰다.

기원전 202년 드디어 한나라와 초나라의 최후의 결전이 시작되었다. 대장군으로 임명된 한신은 절세의 영웅 항우의 군대를 측면에서 공격하여 분열시킨 후 항우를 포위하였다. 이후 초나라의 노래를 불러 항우와 초나라 군대의 사기를 저하시켰는데,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사성어가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

결국 항우는 오강(烏江)에서 자신의 연인과 자살하게 되었고, 이것을 묘사한 것이 패왕별희(覇王別姬)이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가 되었다. 책사 장량은 황제가 된 유방이 틀림없이 자신들을 의심하고 제거할 것이라 생각하고 몸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은둔해버렸다. 그러나 한신은 마지막까지 유방을 믿고 있었으나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때 한신이 내뱉은 말이 ‘토사구팽’이란 단어이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필요가 없어 죽임을 당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