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79 - 중국 인물열전 (20) 공자(孔子 BC551-479): ‘모르는 것은 물어봐라’

Author
ient
Date
2018-01-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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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basis63@hanmail.net
출처: 평안신문

(20) 공자(孔子 BC551-479): ‘모르는 것은 물어봐라’

한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 바로 산동성(山東省)이다. 인구가 거의 1억명에 달하고 농업과 공업이 상당히 발달한 지역으로 중국의 남북을 잇고 있다. 산동성은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가는 고속도로와 고속철이 모두 이곳을 지나고 진시황때부터 시작된 대운하도 이곳을 지난다.

중국의 5악(5대명산)중에 최고로 여기고 역대 황제들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태산(泰山)도 산동성에 있다. 태산이 위치한 태안이란 곳에서 고속철로 15분이면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성인(聖人)으로 환영받는 공자(孔子)의 고향 곡부(曲阜)에 도착할 수 있다.

곡부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말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呼)”이다. 실제로 산동성의 표어가 “손님을 좋아하는 산동(好客山東)”이니 산동성의 이곳 저곳 모두 공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공자의 고향인 곡부에는 三孔이라하여 공자의 집, 공자사당, 공씨의 무덤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공자가 살았던 곡부는 춘추시대의 노(魯)나라로 그렇게 강력한 국가가 아니었다. 전란의 와중에 임금과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전쟁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구현할 것인가가 그의 철학의 중심이었다. 그는 인(仁)과 예(禮)를 강조하였다. 임금은 인애(仁愛), 인자함과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백성들은 예로써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이 세상에 평화가 온다고 설파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제자들을 받아들였고 그의 학당에 은행(銀杏)나무가 있어 행단(杏壇)이라고도 했다. 그는 평생동안 약 3,000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이후 그의 말을 집대성한 책이 바로 지금도 읽혀지는 논어(論語)이다.

공자는 곡부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천하를 떠돌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공자의 ‘주유천하(周遊天下)’ 혹은 ‘주유열국(周遊列國)’이라고도 한다. 공자는 위나라, 진나라, 조나라, 송나라, 초나라 등을 다니면서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였으나 위정자들은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약육강식과 권모술수의 시기였기 때문에 공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수용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한나라에 와서야 비로서 국가의 통치이념이 되었고 수천년간 중국의 지배사상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 황제체제의 멸망과 함께 공자의 유교사상도 함께 매몰되었고 심지어는 국가를 망친 원흉으로 지목되어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모택동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에도 공자의 사상은 낡고 봉건적인 사상으로 지탄을 받아왔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과 경제적 발전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통치이념이 필요했고 중국 정부에 의해 다시금 공자 사상이 부활하고 있다. 지금의 주석인 시진핑도 공자의 고향인 곡부를 방문하고 그 유교의 덕목을 강조하고 있으니 공자는 죽어도 그의 사상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여전히 살아있다.

공자가 남긴 많은 말 중에 우리의 생활에 품을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사람이 세명이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란 말은 누구나 능력이 다르니 서로에게 배우기를 힘쓰란 뜻으로 들린다.

공자가 말하는 지혜는 아주 쉬운데서 시작한다.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不恥下問)”, “아는 것은 안다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하라인데, 곰곰 생각해보면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한 적이 많이 있어 2500년전의 공자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