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9) - 돈황(敦煌): 실크로드의 허브(Hub)

Author
ient
Date
2018-04-1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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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낙타에 짐을 싣고 하서주랑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더 이상 지쳐서 갈 수 없을 만큼 힘들 때 마치 신기루와 같은 오아시스(oasis)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하늘에서 내린 축복과 같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먼 여정의 휴식을 취하게 된다. 바로 실크로드의 허브로 불렸던 돈황이다.
돈황은 간쑤성에 속하며, 하서주랑의 제일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고 칭하이(靑海)성과 신장(新彊)성이 맞닿는 곳이다. 돈황의 석굴인 막고굴과 한나라 시기에 건설된 만리장성의 끝인 옥문관(玉門關), 양관(陽關)이 있는 당시 중국을 떠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원래 이 지역은 월씨국(月氏國)이 살고 있었으나 흉노족의 침입으로 이들은 서쪽으로 떠났고 이후 한나라가 강성해지면서 한족들이 차지하고 실크로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나라의 무제때 주천과 무위라는 도시를 만들고 만리장성과 봉화대를 건설하여 흉노족의 침입을 막고 무역로를 개척하였다. 이후 무역의 중심지인 돈황을 차지하기 위한 한족과 다른 민족간의 대립이 계속 되었다. 그럼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페르시아인, 투르크인, 인도인 등 수많은 민족들이 어울리는 국제적인 무역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5호 16국 시대의 한족 국가인 서량(西涼: 400-421)은 돈황을 자신의 수도로 삼았고 이때부터 불교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불교는 무역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석굴에서 불교를 상징하는 조형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천불동(千佛洞)이었다.
이후 당나라 시기가 되면서 무역이 더욱 본격화 되었는데 돈황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는 천산남로와 천산북로의 두 갈래가 생겼다.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국이 번성했던 시기를 당나라와 송나라를 언급하는데 그 배경에는 바로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나라 시기에도 이 지역을 방어 및 동서무역의 요충지로 삼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되었다.
안녹산의 난이 발생해서 당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지자 토번(吐藩), 즉 지금의 티베트 족이 돈황과 하서주랑 지역을 다시 점령하였다. 지금도 이 하서주랑과 청해성 및 사천성 등에는 라마불교를 믿는 많은 티베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역사의 연속성을 읽을 수 있다.
당나라의 쇠퇴와 이후 몽골족의 원나라가 세워지면서 돈황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더 큰 이유는 중동지역에서 등장한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던 통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무역길이 막힌 돈황은 허브(hub)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 사람들에게 중국은 미지의 세계로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돈황 역시 중국사람들에게도 점차 잊혀져 오랜 동안 모래 사막속에서 자신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유럽은 대항해의 시대를 맞이하였고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중국과 다른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끊어졌던 길이 다시 연결되었는데 이번에는 육로가 아닌 바닷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 아닌 유럽이 되었고 중국과 동아시아는 서양에게 침탈받는 대상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1900년이 되어서야 돈황의 막고굴이 발견되었고 그 연구 끝에 돈황의 실크로드에서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제 돈황은 ‘일대일로’의 새로운 시작으로 다시금 과거의 영화를 꿈꾸고 있다.


박기철(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