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60 중국 인물열전 - (1) 춘추전국(春秋戰國): 천하통일을 기다리며

Author
ient
Date
2018-01-0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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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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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1) 춘추전국(春秋戰國): 천하통일을 기다리며

중국의 많은 사상과 철학, 삶의 지혜가 완성된 시기는 춘추전국(春秋戰國)시기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들, 공자(孔子), 맹자(孟子), 노자(老子)등은 자신들의 처세술과 통치술을 기록하거나 구술로 남겼고 이들을 따르는 제자들이 생기면서 학파로 발전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가(儒家), 도가(道家), 법가(法家), 묵가(墨家),법가(法家)등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학파들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의 꽃을 피웠고 이 시기를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의 사상은 지금도 국가를 다스리는 치국(治國)의 본보기로 사용되고 있다.

‘춘추(春秋)’라는 말은 원래 공자(孔子)가 자신의 고국인 노(魯)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이었다. 중국 최초의 봉건왕조였던 주(周)나라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각 제후국들이 독립을 하였고 서로간의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기원전 770년에서 476년까지 약 300년의 기간을 춘추시기라고 말한다.

춘추시기에는 독립국가의 수가 약 140개 이상이었고 기록에 남겨진 전쟁의 횟수가 1200회가 넘었다. 오늘날 지구상의 많은 국가들이 생존과 발전을 위해 경쟁과 전쟁을 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2700년전에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에도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권을 차지하는 국가들이 있었다. 모두 5개의 나라들이 서로 패권을 장악했는데 이를 ‘춘추오패(春秋五霸)’라고 한다. 이들 국가들은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들을 자신들의 문객으로 초청하여 국가를 강성하게 하는 정책과 전략을 모색하였고 그 결론은 부국강병(富國强兵)으로 귀결되었고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한다는 적자생존의 시대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한자 고사성어도 이 시대에 탄생한다. 친한 친구의 관계를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하고, 싫은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 하는 것, 재기를 위해 힘든 것을 이겨내는 것을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고 하는 말들이 다 춘추시기에 만들어진 말들이다.

고되고 힘든 난세에도 꽃피웠던 중국의 수많은 사상들을 바탕으로 수많던 국가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결국에는 생존에 성공한 7개의 국가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 시기를 전국(戰國)시기라고 하는데 한(漢)나라의 유향(劉向)이라는 사람이 당시의 종횡가(縱橫家)의 전략과 역사를 서술한 ‘전국책(戰國策)’을 지었고 이를 기초로 기원전 475년에서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전국시기(戰國時期)라고 부른다.

전국칠웅(戰國七雄)인 진(秦),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魏), 제(齊)의 일곱 개의 국가들이 다시금 천하통일을 놓고 250년에 걸쳐 전쟁을 겪게 된다. 중국은 춘추시기와 전국시기를 합치면 약 500년의 기간 동안 전쟁을 치루면서 통일왕조를 만들게 된다.

이 7개의 국가들은 다양한 국가의 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법률을 제정하고 관리제도를 개혁하고 경제발전을 통해 부국강병을 꾀하게 된다. 그 당시의 많은 제도나 개혁등을 지금 살펴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것들이 많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결국 500년간의 경쟁속에서 살아남아 유일하게 중국을 통일한 국가가 바로 진(秦)나라이고, 그 주인공이 진시황(秦始皇)이다.

진시황은 무엇을 기반으로 진정한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루었을까? 그리고 이후 중국이 지금까지 하나의 중국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