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55 비즈니스 삼국지 - (36) 유비의 패배: 이릉대전(夷陵大戰)

Author
ient
Date
2018-01-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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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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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36) 유비의 패배: 이릉대전(夷陵大戰)

삼국지에는 수많은 전투와 전쟁 장면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세 번의 전쟁은 조조(曹操)가 원소(袁紹)를 격파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관도대전(官渡大戰)’, 그리고 오나라와 촉나라가 연합하여 조조의 백만대군을 물리친 ‘적벽대전(赤壁大戰)과 함께 이릉대전이 있다.

이릉대전은 형주(荊州)를 지키다가 전사한 관우의 복수를 위해 유비가 국력을 총동원하여 오나라를 공격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무모함을 알고 있던 제갈량과 조자룡 등은 유비에게 전쟁이 불가능함을 수차례 건의하였으나 이미 관우의 복수에 눈이 먼 유비는 직접 70만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로 진격하였다.

서기 221년 시작된 이 전쟁은 서막부터 유비에게 불길함이 엄습하고 있었다. 유비, 관우, 장비의 삼형제 중 관우는 이미 죽었고, 남아있던 장비마저 자신의 부하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더욱 분개한 유비는 제갈량에게는 수도인 성도(成都)를 지키게 명령하고 조자룡에게는 후위부대를 맡기고 자신이 선봉에 나섰다.

이 전쟁은 한참 무더운 여름인 7월에 시작되었다. 관우와 장비를 잃은 촉나라의 군대는 유비와 같이 복수심에 불타있었고 또 대군을 이끌고 초기 전투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오나라의 손권은 당시 육손(陸遜)을 대장으로 임명하여 촉나라에 대항하도록 하였다.

육손은 자신의 군대가 숫적으로나 사기가 직접 대결을 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진영에서 방어만 할 뿐 출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유비는 손권의 조카가 지키고 있는 성을 공격하여 육손을 자극하였다. 오나라의 장군들이 육손에게 지원군을 파병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육손은 이를 거절하고 병력을 분산시키면 모두가 패배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전략을 굽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속전속결을 원했던 유비의 전략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원래의 계획은 장강을 통한 수로와 육로로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었으나 육손이 방어만하고 나오지 않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병사들이 점차 지치기 시작했다. 유비는 할 수없이 수군을 육지로 올라오게 하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산속에다 진지를 구축하였는데, 이것이 유비의 결정적인 패배의 이유가 되었다.

유비의 군대가 지쳐있고 험한 산속에 있어 전방 부대와 후방 부대가 길게 줄지어 있어 육손이 드디어 기습을 시작했다. 비록 육손이 첫 번째 기습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유비의 약점을 간파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진지를 구축할 때 주로 목재를 사용했는데 700리를 늘어선 유비의 군대가 화공(火工)에 약하다는 것을 이용하여 병사들로 하여금 마른 풀들에 불을 붙여 유비의 진영을 공격하도록 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불씨에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했고 산속의 나무와 풀들이 함께 타면서 유비의 진영은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

유비는 결국 백제성(白帝城)으로 패주하였고, 이후 조자룡의 지원군이 달려와 간신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유비는 홧병에 수도로 돌아오지 못하고 백제성에서 운명을 다하게 된다.

‘이릉대전’은 촉나라와 오나라 모두 타격을 입었고 결국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시작점이기도 하였다. 이릉대전의 과정을 살펴보면 지도자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흥분하거나 감정에 사로잡혀서 판단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동시에 오나라의 대장이었던 육손의 냉정한 판단과 잘 준비된 대책은 비록 처음에는 수세에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승리와 성공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리더들은 이릉대전의 경우를 통해 흥분한 감정과 준비된 이성이 부딪힐 경우 항상 이성이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