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의 빛과 그림자 226 비즈니스 삼국지 - (7) 허유(許攸) : 자만심은 파멸의 지름길

Author
ient
Date
2018-01-0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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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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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신문

(7) 허유(許攸) : 자만심은 파멸의 지름길

삼국지에 나오는 결정적인 전투는 관도대전(官渡大戰), 적벽대전(赤壁大戰), 이릉대전(夷陵大戰)을 들 수 있다. 관도대전은 삼국지 초기 누가 중원의 지배권을 가지는가에 대한 조조(曹操)와 원소(袁紹)의 대결이었고, 적벽대전은 유비와 손권이 연합해서 조조의 남하를 막아내고 삼국정립(三國鼎立)의 계기가 된 전투였다. 그리고 이릉대전은 관우가 죽고난 후 유비가 오나라를 공격하였고 이 전투에서 유비는 패했고 이로 인해 촉한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관도대전의 일이다. 군사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원소가 관도에서 조조군을 포위하였고 오랫동안 대치하였다. 군량이 떨어지고 지쳐가던 조조에게 어렸을 때의 친구인 허유가 밤늦게 찾아왔다. 원래 허유는 원소의 진영에서 책사를 맡고 있었으며 조조를 패퇴시킬 방책을 원소에게 건의하였다가 욕을 먹자 배신하고 조조를 찾아온 것이었다.

허유는 원소에게 조조의 군대가 관도에 계속 머물고 있어 수도인 허창(許昌)이 비어 있을테니 이곳을 공격하면 쉽게 승리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의심이 많던 원소는 허유가 원래 조조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 건의를 무시하고 오히려 질책하였다. 이에 허유는 밤에 몰래 빠져 나와 조조에게 원소의 군량미를 쌓아둔 오소(烏巢)가 경비가 허술하다고 알려주어 이를 공격하게 하였다. 순식간에 군량미를 잃은 원소의 군대는 대패하였고, 도망간 원소는 2년도 안되어 병사하였다. 이 관도대전을 계기로 조조는 중원의 북쪽을 차지하고 명실상부한 패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된 허유는 기고만장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익주성(翼州城) 앞에서 큰 소리로 조조의 어릴 때의 이름을 불렀다. 조조의 아명(兒名)은 만(瞞)이었는데,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만약 내가 없었다면 네가 어떻게 이 성을 차지할 수 있었겠냐” 라고 큰 소리를 쳤다. 조조는 웃으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 지나쳤지만 조조의 부하들은 참을 수 없었다. 장군 허저(許褚)가 참지 못하고 달려나가 허유의 목을 베어 버렸다. 세치 혀로 자만하던 허유의 목이 땅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생활하는 중에 원소나 허유같은 사람들을 적지않게 만나게 된다. 원소가 허유의 건의를 거절한 것은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주위의 말을 무시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는 패배로 끝나고 만다. 허유도 자신의 재주와 작은 공로에 사로잡혀 기고만장하다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자신을 과대포장하며, 주위의 의견이나 건의를 듣지 않고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틀림없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유형에 속할 것이다. 자아도취에 사로잡한 사람들의 업무능력을 보면 그렇게 신통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열심히 일하기보다 자신을 포장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거두였던 포드는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나 성과에 자만하고 그 자리에 머문다면 그의 실패는 바로 눈앞에 닥칠 것이다”라는 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충고를 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시작할 때 최선을 다해서 성공을 이루어 낸다. 그러나 조금 성공한 것에 자만할 경우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에 진출해서 성공했던 한국의 기업가들이 처음에는 성공했으나 나중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이유는 초기에 저렴한 인건비로 쉽게 성공했기 때문에 자만하고 기업을 잘 돌보지 않고 변화를 읽지 못해 회사의 문을 닫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국의 옛 말에 “자만은 손해를 불러오고 겸손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滿招損, 謙受益)”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자신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