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9) - 말라카 해협: 잊혀진 왕국

Author
ient
Date
2018-10-04 15:19
Views
652
중국의 광저우를 떠난 해상실크로드가 베트남의 경제 수도인 호치민을 지나 아랍과 유럽으로 가기 위해 꼭 지나가야 하는 길이 있다. 바로 말라카 해협(Malacca Str)이다.

말라카 해협은 길이가 약 800킬로미터이고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물동량이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이 해협의 가장 좁은 곳은 2.8킬로미터이고 수심도 25미터에 불과하지만 전략적 가치는 어느 곳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이 수입하는 중동 원유의 90%가 이곳을 통과하고 유럽과 인도,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많은 제품들이 말라카 해협을 이용하고 있어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원래이 해협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영해였으나 지금은 국제해협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4세기경 아랍상인들이 인도양을 거쳐 말라카 해협을 지나 중국의 남부까지 항로를 개척하였으며 이 해상 길을 통해 비단, 도자기, 향로 등을 로마와 유럽까지 거래하는 무역로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말라카 해협은 7세기에서 15세기까지 중국과 인도, 중동의 무역에서 꼭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고, 중국의 대탐험가인 정화(鄭和)도 6차례나 이곳을 지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길을 통과하는 교역량은 현재 세계 해상 무역량의 25%에 달하고 있고, 매년 10만 척의 화물선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과 같이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에게는 생명선과도 같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원래 말라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 지역에 이전에 말라카 왕국이 존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402년에서 1511년까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말라카 왕국은 당시 해상실크로드의 중심으로 번영을 구가하였다. 말라카 왕국을 세운 왕은 이슬람으로 개종함으로써 이 지역이 이슬람 문화가 번성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이 지역에서 나는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주석을 들 수 있는데 명나라의 역사서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주석채취와 물고기 잡는 일이 주업이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지금도 말레이시아의 주요 수출품의 하나가 말라카의 주석이다. 유럽의 절대왕정이 등장하고 지리상의 발견이 유행하면서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여 포르투갈에게 점령당하고 말라카 왕국은 멸망하였다. 이후 네델란드가 다시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자신의 영토로 삼았다.

영국의 해외식민지 개척이 시작되면서 네델란드와 갈등을 빚었는데 1824년 런던 협약을 통해 말레이 반도 지역을 영국이 차지하고 수마트라와 자바 등 인도네시아 지역은 네델란드가 통치하기로 함으로써 말라카는 다시 영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1895년 영국이 해협식민지을 통합해서 통치하였고 장기간의 식민지 시기를 겪은 후 1948년 2월 1일 말라야 연방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말레이시아가 하나로 통일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195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술탄의 독립적 왕국을 말레이시아라는 연방정부로 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1963년에 브루나이를 제외하고 말레이시아 연방을 수립하였고, 2년 후 싱가포르가 연방에서 탈퇴하였다. 그래서 현재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는 독립국으로 존재하고 각자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과거 해상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번영을 누렸던 말라카 왕국은 역사속에 사라지고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 말레이시아의 영토로 변해왔다. 비록 왕국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의 해상 루트인 말라카 해협으로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basis63@hanmail.net / ☎ 010-7149-8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