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 48 중국 권력투쟁의 시작

Author
ient
Date
2018-01-09 00:14
Views
645
평안신문
승인 2012.04.04 17:49:39

‘권력’은 인류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본능적으로 이를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그 자체로 존재해왔다. 권력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정의가 뒤따르지만 그 특성에는 지배와 복종, 통제, 영향력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권력을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개인 또는 집단이 다른 개인 또는 집단의 행동을 자신의 뜻으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대로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력(political power)은 국가의 공권력과 합법적 물리력을 소유하고 통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권력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에서 정치적 권력을 둘러싼 투쟁과 갈등은 계속되어왔다. 어떤 경우에는 눈에 띄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투쟁이 있어왔다. 올해 지도부가 바뀌는 중국 정치판에 새로운 권력투쟁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금방 끝난 전국인민대표대회 끝자락에 원쟈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는 공개적으로 충칭시(重慶市) 서기를 맡고 있는 보시라이를 향해 ‘반성해야 한다’고 일갈을 하였고 이어서 보시라이는 실각하고 말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면 충칭시 부시장이 부패와 연관하여 조사를 받던 중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미국대사관을 찾았고, 미국은 정치적 부담을 느껴 이를 거부함으로서 그 책임이 부하를 잘못 관리한 보시라이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부터 중국 공산당 내에서는 권력투쟁이 있어왔다. 1928년 장제스(蔣介石)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공산당내에서는 도시투쟁과 농촌투쟁의 방향성을 놓고 노선 투쟁을 겸한 권력 투쟁이 있었고, 결국 마오쩌둥이 이 투쟁에서 승리하여 죽을 때까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이 권력을 장악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에도 자신의 노선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던 펑더화이(彭德懷)를 권력과 노선투쟁의 제물로 삼았으며, 이후 류샤오치(劉少奇)도 문화대혁명을 통해 제거하였다. 이후에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던 린뱌오(林彪)도 자신의 정적으로 간주하여 숙청하였으며, 4인방과 화궈펑의 권력투쟁 등 크고 작은 투쟁이 있어왔다.

후진타오의 권력 말기인 지금의 중국 공산당은 파벌간의 투쟁이 한창이다.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청년단과 쟝저민이 심어놓은 ‘상하이 방’, 그리고 제5세대 주자인 시진핑의 태자당, 이 3대 파벌이 올해 가을에 열릴 18차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어느 세력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장악할 것인가를 놓고 투쟁중에 있다.

시진핑의 태자당 세력에 비해 열세인 후진타오의 공산주의 청년단 세력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상하이 방과 결탁하여 시진핑의 조력자이며 태자당의 또 다른 주축인 보시라이를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보시라이의 최측근으로 부시장이었던 왕리쥔의 개인적인 비리를 이용해 보시라이를 공격하고, 그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보시라이의 낙마는 공산주의 청년단의 세력 확장과 태자당의 약화를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올해 권력을 이어받을 시진핑의 세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고 후진타오는 자신의 영향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자신의 세력을 심을 수 있게 된다. 동서고금을 통해 한번 맛본 권력은 정말 놓기 힘든 달콤한 독약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