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7) - 베트남, 혁명에서‘도이모이(Doi Moi)’로

Author
ient
Date
2018-08-2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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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혁명에서‘도이모이(Doi Moi)’로

오늘날 중국 경제발전의 기초에는 1978년 등소평이 설계하고 추진한 개혁과 개방 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중국 정책의 기조는 개혁과 개방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만 경우에 따라서 폭과 속도를 조절하고 있을 뿐이다. 베트남도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 국가였고 전쟁 이후의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과감한 정책을 시도하였다.
베트남이 최근 급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도이모이(Doi Moi)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베트남이 남북을 통일한 것은 1975년 4월 30일이었고, 남베트남의 모든 사기업과 외자기업을 국유화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베트남 전역이 사회주의로 개조된 것이다. 이것은 중국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3년간 사회주의로 개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회주의 개조 이후 베트남은 중국과 소련이 경험한 것과 같이 중공업 위주의 산업발전 전략을 채택했고 민간경제를 소홀히 함으로써 경제적 후퇴가 가속화되었다. 1979년 베트남 정부는 자신의 정책에 대한 오류를 인정하고 ‘신경제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졌고 경제가 어느정도 회복하였으나 그 부작용이 크게 발생했다.
베트남은 이러한 경제적 불안이 정권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과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였으니 바로 ‘도이모이’ 정책이다. 도이모이에서 ‘도이’는 변화하다, ‘모이’는 새롭게의 뜻으로 ‘새로운 변혁’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정책을 베트남의 개혁정책으로 부르기도 한다.
1986년에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제정된 도이모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베트남에 맞게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 목표는 중국의 ‘경제건설 최우선’과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경제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대신 정치체제는 여전히 사회주의의 틀 속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베트남특색의 경제건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정책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수출이 증가되어 점차 베트남의 경제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특히 1994년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하고 1995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로 베트남 경제 발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한국의 기업들도 이때부터 베트남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호치민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경제는 1990년대에 평균 8%의 성장을 함으로써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2006년 WTO에 가입한 이후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였다. 베트남은 현재 30세 이하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활력이 넘치는 국가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에 대한 조사가 2010년에 이루어진 적이 있는데 당시 현지에 진출한 기업의 93%가 베트남에 만족하고 있다는 통
계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만족하는 이유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충분한 노동력, 인구 1억에 가까운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문화적인 공통점이 한국과 베트남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에 대해 한국의 삼성과 LG 뿐만 아니라 일본기업과 미국의 기업들도 베트남 시장에 앞다투어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발전의 시작은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이 가져온 결과이다. 한 국가의 발전과 정책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비록 베트남이 지금은 여전히 개발 도상국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가 잘 준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빠르게 우리를 따라올지 모른다. 오늘의 상황이 내일도 똑 같지 않을 수 있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리고 올바른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엔가 상대방이 우리를 앞질러 갈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더욱 분발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박기철(朴起徹) /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basis63@hanmail.net / ☎ 010-7149-8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