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3) - 광저우(廣州) - 중국과 세계가 만나는 곳

작성자
ient
작성일
2018-08-05 19:51
조회
83
중국의 광저우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지명일지도 모른다. 베이징이나 칭다오에서 만나는 짝퉁의 원산지가 대부분 광저우이고 세계 각지의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광저우를 단순히 모조품의 메카라고 부른다면 광저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광저우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가 중국을 만나고 중국이 세계를 만나는 곳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게 이 지역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광저우는 한나라시기부터 해상실크로드의 중심항구였고 당나라와 송나라 시기에 중국 최대의 항구였다. 한국의 혜초스님도 해상실크로드를 따라 먼저 중국의 광저우에 도착했고 이후 다시 해상실크로드를 따라 인도까지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시기에 들어와서도 광저우는 중국의 가장 큰 대외무역 항구였고 중국이 해외로 나가는 중요한 항구로서 기능해왔다. 세계적으로 2천 년을 넘게 쉬지않고 항구의 역할을 한 곳은 광저우 이외에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또한 광저우는 중국의 영욕의 역사를 같이 걸어왔다. 1838년 청나라 황제가 임칙서를 광동 도독으로 임명했고 그는 부임하자마자 중국에게 피해를 주는 2만 상자의 아편을 몰수하였고 몰수한 아편을 불태워 버렸다. 중국 시장을 노리던 영국은 이를 빌미로 47척의 군함과 4천 명의 군인을 보내에 광저우를 흐르는 주강(珠江)을 봉쇄하고 청나라를 공격하면서 아편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불평등조약인 ‘남경조약’을 맺게 되었으며 이후 100년 이상 영국과 프랑스 등 열강의 침략과 수탈을 당하게 되었다. 이후 세계의 중심은 중국에서 서방 유럽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고 지금도 그 관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질곡의 역사를 보낸 중국은 드디어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중국 정부는 광저우를 대외무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현재의 광저우는 중국 광동성의 수도이고 매년 개최되는 ‘廣交會(광주수출입상품교역회: Canton fair)’에는 세계 각지의 무역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광교회는 1957년에 성립되었고 매년 두 번에 걸쳐 무역박람회가 개최된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데 봄에는 4월 15일에서 5월 5일까지 그리고 가을에는 10월 15일에서 11월 4일까지 열린다. 이때 참여국가가 보통 210개가 넘고 20만 명의 상인들이 밀집되는 어마 어마한 규모이다. 이 시기에 광저우에서 호텔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로 할 만큼 세계가 광저우에 집중되고 있다.
광저우에 가보면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열강들이 거주했던 지역에서 과거를 읽을 수 있으며 동시에 시내를 돌아보면 현재의 광저우를 볼 수 있다. 도시의 여러 건물에서 영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가 적힌 간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길거리는 마치 세계 각국의 인종의 전시장처럼 많은 상인들이 두 손에 보따리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공항, 기차역, 버스터미널에는 끊임없는 인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심천과 광동성 각지를 오가는 트럭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광저우를 중심으로 주변의 도시들이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저우에 온 상인들이 물건을 주문하면 인근의 도시에서 그 생산한 물건들을 원하는 장소로 또 원하는 국가로 보내기에 분주하다.
광저우는 지금 중국의 해상실크로드의 중심으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각 지역에서 광저우를 거쳐 동남아로 그리고 세계로 ‘made in China’를 실어나르고 있으며 동시에 세계의 제품들이 광저우를 통해 중국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중국과 세계를 통하는 관문, 광저우는 동남아로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박기철(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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