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2) - 해상실크로드의 시작

작성자
ient
작성일
2018-07-12 01:45
조회
86
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는 중국의 당나라 시기 수도였던 장안(시안)에서 출발하여 사막을 지나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의 이스탄불과 유럽으로 가던 길들을 지칭하여 왔다. 이러한 육상의 실크로드 이외에도 사실 바다를 통해 유럽과 세계를 연결하던 길이 있었으니 바로 ‘해상 실크로드’이다. 지금의 세계는 해상으로 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고대 유럽에서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모방해서 만들고 싶어했으나 그 기술을 여전히 알지 못했다. 성공적인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온도가 중요했고 특히 그 열에 맞는 재료인 흙이 중요했는데 유럽에서는 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자기가 중국에서만 생산되었기에 도자기의 영어 이름이 ‘china’인 것도 그 이유가 될 것 같다.

유럽에서 값비싸게 팔릴 수 있는 도자기를 운반하는 것이 당시 많은 상인들의 고민이었다. 낙타와 말을 이용해서 도자기를 운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결국 해상의 길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길을 일컬어 ‘도자기 길’, ‘향료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는 1913년 프랑스의 동방연구학자가 처음으로 명명했다.

가장 대표적인 해상 실크로드는 남해 해상 실크로드로 주로 중국의 남쪽 지역인 광저우와 취엔저우에서 시작되었다. 해상 실크로드는 일찍이 중국의 상나라 시기부터 시작되었고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와 한나라 시기에 형성되었다. 이후 당송시기의 발전을 거쳐 명청시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동해쪽으로는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와 한국, 그리고 일본과 동남아까지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동해 해상항로였다. 중국의 동쪽으로 이어지는 이 해상노선에서 장보고가 당시 해상왕 이름을 얻으면서 동해 해상노선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이 항로는 약 100개가 넘는 국가들과 지역을 거쳤고 송나라와 원나라 시기에는 지구의 반에 걸쳐 있었다고 하기도 한다. 초기에는 비단이 많았으나 송나라와 원나라 시기에는 도자기가 점차 가장 중요한 화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 향신료도 많이 수출되었기 때문에 향료의 길이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당나라 시기에 광저우가 중국 최대의 항구도시였고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 페르시아만까지 이어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항로였다. 원래 이 해상항로는 육상 실크로드의 보조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았으나 중동지역이 전쟁에 휩싸이자 점차 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또한 선박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동남아, 말라카 해협, 인도양, 홍해에서 아프리카까지 연결되었다.

송나라에 와서는 중국의 광저우, 닝보, 취엔저우가 3대 무역항이었고 북쪽의 한국과 일본의 교역을 위해서, 그리고 중동의 아랍지역과의 교역을 위해 가장 가운데에 위치한 췌엔저우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원나라 시기에 가장 큰 항구가 될 수 있었다. 주로 도자기와 비단, 차, 금은 등을 수출하였고 향신료, 후추, 약재 등을 수입하였다.

원나라 이후의 명나라는 초기에는 정허가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7차례에 걸쳐 대원정을 떠나기도 하였으나 점차 중앙정부가 해금령을 내려 해상 실크로드가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반면 유럽 각국은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중국과 유럽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8세기의 산업혁명과 동시에 해상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바다를 소홀히 한 중국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열강의 침입과 침략에 약 100년간 고통을 받았다. 이제 중국은 ‘중국의 꿈’을 외치면서 육상뿐만 아니라 해상 실크로드의 부활을 위해 다양한 정책과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박기철(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basis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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