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21) - 이스탄불: 유라시아 대륙의 경계

Author
ient
Date
2018-07-1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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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를 넘어 서쪽으로 유럽을 향해 진행하다보면 만나는 곳이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유럽과 만나는 아시아의 마지막 여정, 그리고 유럽으로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터키는 북쪽으로는 흑해를 남쪽으로는 지중해, 그리고 동남쪽에는 시리아와 이라크와 접해있다. 서쪽으로는 그리스, 동쪽으로는 조지아와 이란 등과 접해 있어 동서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고대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곳이기도 하고 유럽과 아시아의 혈통이 섞여서 만들어진 국가이다. 특히 중국의 북서쪽에 있던 유목민인 돌궐족도 이곳에 들어와 지금의 터키가 만들어졌다. 돌궐이란 말은 용감하다는 의미로 용감한 유목민족이 이곳에 와서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지만 규모는 이스탄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터키에서 가장 발달하고 중요한 도시는 바로 이스탄불이다. 이스탄불은 하나의 도시에 아시아와 유럽, 두 개의 대륙을 품고 있다. 원래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는 기원전 7세기에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이라고 불렸고 이후 330년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다. 그리스 정교를 바탕으로 기독교 국가였으나 이후 1453년 오스만제국이 이곳을 점령하여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현재 터키는 인구가 약 8천만 명이고 일인당 GDP가 9200불에 달해 중동 지역에서 상당히 높은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를 근거로 유럽공동체에도 가입되어 있어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평균 연령 30세의 가용 노동인구가 전체 인구의 50%에 달해 생산과 소비가 다 가능한 경제적 발전의 잠재력이 큰 국가이기도 하다.

터키 최대의 도시인 이스탄불의 중심에 서면 두 개의 모스크 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소피아 성당이고 하나는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쌍둥이 모습을 하고 있다. 소피아 성당은 동로마 제국의 기독교의 상징이었으나 훗날 오스만이 이곳을 점령한 후 파괴하지 않고 모스크로 바꾸었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다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최대의 ‘그랜드 바자’를 만날 수 있다.

비가와도 피할 수 있는 지붕을 얹은 이 시장에는 아시아, 유럽, 중앙 아시아의 다양한 제품들의 매매가 이루어진다. 이전의 실크로드가 왕성했을 때 유럽으로 가는 마지막 중계무역상들이 모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열성적인 호객 행위를 보면 천 년 전의 실크로드의 중계항이었을 때도 이러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중국은 중동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터키를 설정하고 경제적 관계에 집중했다. 실제로 2000년의 중국과 터키의 무역액은 12억에서 2015년에는 215억으로 거의 20배가 증가하였다. 중국은 터키를 ‘일대일로’의 핵심적 교량이라고 선언하고 많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수도인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의 고속철로를 중국이 건설하고 에너지에서의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터키는 한국에 대해서 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터키인의 조상인 훈족과 돌궐족은 고대 중국의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와의 전쟁을 한 경험이 우리와 상통한다. 그래서 우리를 형제국가로 인식하고 있고 한국전쟁에도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를 도와준 경험이 있다. 그래서 터키 사람들은 우리를 피로 맺어진 형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터키와 이스탄불은 한국이 중동 지역과 유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멀리 떨어진 우리의 형제 국가라는 인식을 공유하여 교류한다면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박기철(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basis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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