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19) - 투르크메니스탄: 돌궐의 후예들

작성자
ient
작성일
2018-07-12 01:22
조회
68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카스피를 통해 해양으로 진출 할 수 있으며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 동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남으로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과 접해있다. 해안선의 길이가 1,768킬로미터로 드디어 중앙아시아의 국가 중 바다가 인접한 유일한 국가이다.

험난한 산맥과 사막을 가로 질러 실크로드를 쉬지 않고 달려온 많은 이들에게 드디어 안식을 취할 수 있는 평지가 이들을 반기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여기서 서쪽으로 터키로 넘어가기도 하고 아래로 내려와 이란을 거쳐 중동지역으로 가거나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 할 수도 있다.

이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동서양의 힘의 균형에 따라 지배자가 바뀌곤 했다.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점령하기도 했다. 또 페르시아 왕국이 강했을 때는 페르시아에 점령당했다. 이후 투르크족이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오면서 투르크족이 점차 증가하였고, 우리나라의 고선지 장군이 바로 이 지역까지 진출하였으나 탈라스 전투 이후 이 지역은 중동의 이슬람 세력에 의해 편입되어 현재도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7세기 이후 중국의 북쪽 몽고지역에 거주하던 돌궐족(투르크족)이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투르크화 되었다. 중국의 북쪽 유목민이었던 돌궐족과 흉노족들의 서진과 지중해지역의 세력들이 함께 섞이면서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몽고 제국의 징기스칸에게도 정복되었고 이후 몽골의 티무르가 이 지역을 다시 점령하여 티무르 제국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19세기 말에는 강대해진 제정러시아에게 대항하였으나 패배하였고 결국 1885년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이후 1991년까지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국이 되었고 한국과는 1992년 2월에 국교를 수립하였다.

실크로드의 부유함과 화려함은 사라졌지만 한반도의 2배가 넘는 국토를 가지고 있고 특히 가스와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이 가스를 통한 전력 생산이 풍부하여 주변의 국가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터키 등에 수출하고 있다. 또한 기전에는 러시아에 판매하던 가스를 이제는 중국과 연결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몽고의 원나라가 우리를 지배했던 시기에 문익점이 중국에서 몰래 목화를 가지고 들어왔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로 당시 비단, 삼베, 모시로만 의복을 만들었던 한국에 경작이 가능했던 목화가 들어오면서 무명옷이 널리 유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작지의 40% 이상이 면화 경작지이다. 중동 지역의 먼 곳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한국까지 진출하게 되어 우리의 의복을 바꾸어 놓기도 하였다.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은 중국과 유럽을 이어주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또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전과 가스가 중국에게는 매우 필요한 에너지 자원으로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2009년부터 30년간 400억제곱미터의 천연가스를 수입하기로 하였고 이를 위해 7,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가스 배관망을 건설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중국과 석유, 가스, 섬유, 운송 등의 협정을 체결하였고, 중국은 이에 대한 비용을 달러로 지급함으로써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제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또 유럽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박기철(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국제교육통상연구소 소장)basis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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