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 2018

박기철 소장님 중국 칼럼

중국, 길위에 길을 묻다(16) - 키르기스탄: 40개의 부족들

작성자
ient
작성일
2018-05-29 23:14
조회
70
키르기스탄: 40개의 부족들

시안에서 실크로드를 따라가면서 중국의 국경을 넘으면 만나는 국가, 중국의 천산산맥(天山山脈)과 파미르 고원의 중간에 위치한 나라가 바로 키르기기스탄이다. 수도는 비슈케크란 곳이고, 인구는 약 600만명을 가지고 있다. 많지 않은 인구이지만 오랜 역사와 교통의 중심이었던 관계로 다양한 민족들이 혼재해서 살고 있다. 키르기스족들이 70%에 이르고 러시아인, 우즈벡족, 위구르족, 타지크족, 카자흐족, 동간족과 우크라이나, 터키인들이 있고 고려인, 즉 우리 동포들도 어울려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국가의 40%가 해발 3천미터가 넘는 산악지형이고 중국과의 국경에는 천산산맥이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파미르 고원이 접해있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7,439미터의 포베티산이다. 그리고 해발 1600미터에 위치한 이스쿨 호수(Issyk Kul)는 동서로 180킬로미터, 남북으로 60킬로 미터의 엄청난 크기를 가지고 있어 고원 위의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키르기스탄이라는 이름은 원래 숫자 ‘40’의 땅이란 뜻인데 이 지역이 40개의 부족이 모여서 만들어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국가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족과 국가들이 탐을 내는 곳이었다. 역사적으로는 흉노(匈奴)족이 이 지역을 지배했었고 이후에는 돌궐이 또 지역을 지배했었다. 이후 위구르 족이 침략하였으나 이후 키르기스족이 이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를 제패했던 징기스칸의 몽골 제국에게 속해있다가 1863년 다시 러시아 제국에게 합병되었고 이러한 역사의 부침속에서 결국 소련이 해체되던 1991년에서야 비로소 지금의 독립국이 되었다. 2000년 이상을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지만 강인한 민족성이 이 민족을 독립하고 생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

1991년 독립한 이후 그 다음해에는 바로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였고 지리적인 위치로 중국과의 무역이 빠르게 성장하였다. 1998년에 WTO에 가입하였고 국내 경제개혁을 실시하고 1997년에는 중국과의 교역이 거의 90%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다. 이러한 성장세는 2000년대에 들어와 더 증가하였는데 중국은 키르기스탄의 4번째 무역대상국이 되었다.

키르기스탄은 자원이 매우 풍부한 국가이다. 금, 석탄, 은, 아연, 석유, 천연가스 등이 생산되고 있고 특히 금의 경우에는 세계 10대 금광에 손꼽힐 정도이다. 이곳에서 채굴되는 자원들은 독일, 스위스, 아랍에미레이트, 미국, 영국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 또한 양질의 석탄도 많이 생산되고 있어 중앙아시아 최고의 석탄 생산국이라는 칭호와 함께 다양한 대리석도 채굴되어 각국에 수출되고 있다.

반면 키르기스탄은 경공업이 발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활용품의 80%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전자 제품의 경우 100%가 수입품이다. 그 중 고급은 유럽 및 미국과 터키 제품을 사용하고 저렴한 제품들은 대부분이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이름없는 제품들이 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중국제품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중국 제품에 대한 불만은 사실 키르기스탄 뿐만 아니라 주변의 국가들,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에게도 상당하다. 중국 제품들이 내구성이 약하고 중금속 함유가 높아 저렴하지만 믿지 못하는 제품으로 불신을 받고 있다. 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국과 한국 제품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일대일로 길을 따라 서쪽으로 진출할 경우 유라시아 대륙 깊숙이 숨어있는 이 지역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동시에 한국의 세계 시장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질 높은 제품은 우리가 어떻게 세계 시장에 접근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멀지만 길을 통하면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